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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의 퇴사

스탭 티켓도 안녕

by 봄날의 봄동이

혈육이 승무원으로 일하는 3년 동안 나도 가족 신분으로 스탭 티켓의 혜택을 누리며 제법 많은 곳을 방문했다(물론 아직도 목마르지만). 혈육이 건강과 미래 계획을 위해 퇴사를 결정하면서 나의 달콤했던 떡고물 기간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쉽지만 사실 옆에서 혈육이 겪는 건강상의 어려움을 봐 온 입장에서 쌍수 들고 환영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제 불안한 스탭 티켓 사용으로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어 후련하고(이젠 티켓값에 마음 졸이겠지).


승무원 가족의 즐거운 여행기를 가장한(?) 이 글은 소중한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과거의 나를 치유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혈육의 승무원 합격은 혈육 본인에게는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던 미약한 가능성의 실현이었고, 나에게는 어느덧 없던 일인 듯 잊혀졌지만 한때 내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좌절의 연속이었던 어느 시기를 뒤늦게 위로하는 선물과도 같은 일이었다.


딱히 나아갈 방향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던 이십 대 초중반 시절, 승무원이 되어 젊을 때 먼저 세계를 돌아보고 경험하고 싶다던 생각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고 생활하게 되면서 비슷하게, 어쩌면 더 깊이 충족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살이'식 생활이 나에게는 승무원보다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엇보다 지금 내 성격 특성 그대로, 다른 사람인 척하지 않고 내가 나일 수 있는 편안함이 좋다. 인생은 꼭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지나고 보면 그야말로 오히려 좋아이기도 한 것 같다.


한때 당연한 일상이었던 말레이시아 시절이 벌써 까마득히 느껴지는 과거가 되었듯, 스탭 티켓으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달마다 서울에서 고향 가듯 외국에서 한국을 쉽게 오가던 시절도 이제는 벌써 또 다른 과거가 되었다. 해외살이가 많았던 특성상 동네 약속 잡듯 시드니에서 홍콩에서 중국에서 또 한국에서 만나던 기억, 가족여행, 이오버 여행 등 비행기를 KTX 타듯 쉽게 탔던 혈육 찬스가 그리울 것이다.


이제 또 하나의 추억할 시간이 생겼다. 퇴사를 축하하며 이 모든 일의 일등 공신 혈육에게 심심(甚深)한 감사를. 고생 많았네 자네(참고로 혈육이 언니).


카타르 도하 미아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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