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산업은
지금, 물 아래로 서서히 잠기고 있다.
쓰나미는 없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턱끝까지 물이 차올라, 숨통을 조인다.
한때 BYD의 질주는 거의 필연처럼 보였다.
파격적인 가격으로 세계 시장을 밀어붙이며, 유럽의 메이저 브랜드들마저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거센 바람의 뒷면엔, 조용히 새어 나가던 균열들이 있었다.
나는 몇 달 전, 그들이 택한 길이 마치 바람만 불어도 터질 듯한 풍선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지금, 그 경고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현실이 되고 있다.
BYD는 현재 4천억 위안(약 76조 원)이 넘는 숨은 부채를 안고 있다. 전기차 가격을 34%까지 낮춘 건 판촉이 아니라, 숨이 턱 막힌 자의 다급한 손짓이었다.
협력업체에는 8~12개월짜리 어음을 발행하며 현금을 아끼고 있다. 이른바 '디렌 시스템'은 당장의 숨통은 틔울 수 있어도, 결국 숨을 막는 끈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마치 망하기 직전의 헬스장이 마지막으로 연간 회원권을 반값으로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이 위기는 BYD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중국에는 100개가 넘는 전기차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고, 이들이 만들어낸 연간 생산 능력은 무려 4천만 대에 이른다. 세계 전체 수요를 한참 넘어서는 수치다.
출혈 경쟁, 무너지는 이익률, 문을 닫는 딜러들.
모든 장면은 1920년대 미국의 그것과 낯익다. 붕괴 직전의 기시감이 다시 떠오른다.
이 거대한 파동의 책임에서 중국 정부 역시 자유롭지 않다. 코로나 시기 동안 보조금을 3년 연장하며 투자를 독려했고, 이는 과잉 설비를 키웠다.
2023년 보조금이 종료되자 시장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자금난은 산업 전반으로 퍼졌다.
쏟아진 물량을 해외로 밀어내려 했지만, 미국(100%), 유럽(최대 45.3%), 인도(70~100%), 튀르키예(40%), 러시아(대당 1,200만 원) 등 주요국들이 높은 관세라는 성벽을 세웠다.
그리고 그 물량은 결국, 가장 가깝고 문이 열려 있는 한국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싸고 잘 나가는 전기차는 어떤 희생 위에 서 있는가?
BYD의 생산 기지에서는 하루 12시간, 주 6일 일하며 기숙사에서 집단 생활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어떤 공장에서는 자살 사고까지 발생했고, 평균 임금은 도시 평균에도 못 미친다.
이 차는 싸다.
하지만, 그 값은 단순히 싸진 게 아니다. 누군가의 하루, 누군가의 숨이 거기 섞여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 차는 환영받았다.
판매 승인을 받자마자 두 달 만에 1,000대 이상이 고객에게 인도되었다. 보조금 포함 3천만 원대. 소비자들에게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가성비 좋은 차'였다.
유럽도 미국도 일본도 들이지 않은 차를, 우리는 박수로 맞이했다.
그렇다면, 이 혼돈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브랜드는 있을까?
과거의 역사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GM과 포드, 현대차처럼, 위기 속에서도 체질을 바꾸고 질서를 주도한 기업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의 구조조정은 시장이 아닌 정부의 손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기술력이나 브랜드가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다.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배분이다.
게다가 전기차 산업은 내연기관 시대보다 진입 장벽이 낮고, 브랜드 충성도 역시 약하다. 테슬라, 현대, 폭스바겐 같은 글로벌 강자들이 아니고서는, 정부의 숨결 없이 버티기 어렵다.
이런 곳에서 시장은 실력을 가려내는 장소가 아니라, 생명 연장의 무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의견도 극명하게 갈린다.
누군가는 말한다.
"BYD는 1위가 아니라, 1위를 찍은 것이다. 공산당이 뒤에 있는 한 절대 부도는 나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말한다.
"부도 위기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먼저 움직였어야 한다. 주가가 멀쩡한 걸 보면, 위기론은 과장이다."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너무 쉽게 믿는 것도,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것도 결국 진실을 놓치는 다른 방법일 뿐이다.
BYD의 위기는 하나의 기업을 넘어선다. 그것은 중국식 산업 전략의 한계이며, 가격에만 매달린 모델의 말로다.
가격을 깎아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신뢰를 깎아 다시 설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차를 사고 있다.
그들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만든 상품에 기꺼이 올라탄다.
당신은 지금 어떤 차에 타고 있는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누가 만든지도 묻지 않은 채.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