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층처럼 쌓인 희노애락

by 노경문

바빴던 부모님 대신
외할머니 손을 잡고 처음 간 유치원 운동회.

햇살은 눈부셨고, 유치원 옥상은 북적였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 신난 아이였다.

포도당이 담긴 그릇에 얼굴을 묻자
하얗게 얼굴에 묻었고,
할머니는 웃으며 손으로 조심스레 털어 주셨다.
함께 깡통을 굴리며 웃던 그 순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날의 기쁨은 너무 커서
지금까지도 내 마음 한편에 맑고 단단히 박혀 있다.

기쁨은 선명하고 단순했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작은 것 하나에도 온몸이 흔들렸다.
조금만 늦게 주면 울고, 조금만 웃어주면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달라졌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가졌는데,
그때처럼 환하게 웃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무언가를 얻어도, 마음 한쪽에서는 몰래 계산한다.
이 기쁨은 얼마나 갈까.
그 끝엔 무엇이 따라올까.

기쁨은 등 뒤로 부는 바람 같다.
순간 시원하지만, 돌아서면 어디서 불어왔는지조차 잊혀질 만큼
짧고 덧없는 감정이다.

어릴 적의 환희가 폭죽처럼 터지는 순간이었다면,
지금의 기쁨은 잠시 스며드는 여유에 가깝다.

많이 알수록 감정의 파도는 덜 요동치지만,
대신 더 깊은 곳에서 천천히 일렁인다.

사람들은 경험이 많아지면 단단해진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만큼 더 부드러워졌다고 느낀다.
기쁨은 흐릿해졌고, 슬픔은 더욱 뚜렷해졌다.

어릴 적의 슬픔도 나는 잊지 못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멀리 돌아가던 부모님의 뒷모습,
오래 함께한 강아지와의 이별,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외로이 식어가던 마음.
그 감정들은 언어 없이 남았고,
지금도 불쑥불쑥 문을 두드린다.

이상하게도 기쁨과는 반대로,
어른이 되어 겪은 슬픔은
더 깊고, 더 정확하게 아프다.

이 관계는 끝날 것이고,
이 감정은 되돌릴 수 없으며,
이 상실은 회복되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이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른의 눈물은 덜 울어도 더 무겁다.
삶이란,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그저 소리없이 안고 살아가는 긴 수납장 같다.

그 안엔 어린 날의 눈물도,
지나가버린 대화도,
말하지 못한 사랑도 나란히 놓여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조금씩 안다.
아주 잠깐의 안도, 아주 작은 다정함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를.

누구나 자신만의 운동회가 있다.
누구나 포도당 냄새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쁨이 있고,
누군가는 아직 꺼내보지 못한 슬픔을 품고 살아간다.

감정이란, 격렬할수록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폭풍은 지나가도,
그 자리에 지층처럼 감정은 쌓인다.

가볍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지워지지 않고, 스며든다.

기쁨은 이제 조용하고,
슬픔은 나를 더 사람답게 만든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예전처럼 크게 웃지는 않아도,
더 조용하고 깊은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