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능한 사랑아, 나는 너를 알고 싶다

by 노경문

혼자 살아갈 땐,

하루 안에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 모두 지나가는 일은 드물었다.

감정은 하나씩 줄을 서듯 다녀갔고, 일상은 평탄하진 않았지만 대체로 무난히 소비되었다.


하지만 아이와의 하루는 다르다.

한숨과 웃음, 짜증과 뭉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해가 지고 나면, 가슴 안엔 사계절이 몇 번씩 지나간 듯한 잔상이 남는다.


모든 일을 계획하고, 흐름대로 움직이는 삶이 편했다.

예상 가능성은 안도감을 줬고, 반복은 위안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내 질서와 무관하게 존재했다.

이틀 전엔 내 눈빛을 닮았고, 어제는 아내의 웃음소리를 닮았다.

오늘은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잠깐 다녀간 것처럼 행동한다.


‘누굴 닮았다’는 말은, 실은 예측할 수 없는 존재를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놓은,

작은 징검다리였는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애쓰지만,

눈높이를 맞추던 시선은 자꾸 흔들린다.

그 순간, 말보다 감정이 먼저 앞서고,

애써 눌러두었던 목소리가 결국 솟구친다.

나도 모르게 ‘왁’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얼굴을 본 아이가 움찔하는 그 찰나


그제야 늦은 후회가 따라온다.


가장 두려운 건,

그날의 표정 하나가 아이의 기억에 오래 남을까 하는 것이다.


비슷한 기억이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설명받지 못한 감정들이 어떻게 굳어졌는지 알고 있다.

그 감정의 매듭을 풀어내는 데, 몇십 년이 걸렸다.

지금에서야 이해되는 부모의 표정들이 있다.

그 얼굴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더 미안해지고, 더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사랑하면서도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언제나 두렵고, 그래서 육아는 어렵다.


돌이켜보면,

예측을 좋아한 이유도 결국 그 불안을 막기 위한 방어막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세상을 미리 그려놓고,

그 도면 안에 감정과 하루를 배치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러나 아이는 그 도면 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틀을 벗어나고, 내 안의 질서를 흔들며 질문을 던진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수 있나요?”


육아는 사랑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사랑을 다시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사랑은 완벽한 말로 설명되지 않고,

계획처럼 예쁘게 그려지지도 않는다.

다만, 감정을 감정대로 인정하고,

흘려보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문득 떠오른다.

타인에게도 아이처럼 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지금의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믿고,

상처 뒤의 불안을 먼저 읽어내며,

변화의 가능성 앞에서 잠시 멈춰줄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이 사랑은 예측할 수 없다.

그 예측 불가능함이 나를 흔들고,

또 조용히 깨어나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한 사랑아,

너를 제어하려 하지 않겠다.

그저 알고 싶다.

어디로 흐르든,

그 결을 묵묵히 따라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