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에 대하여

by 노경문

윤동주의 시를 읽고, 내 삶을 돌아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너무 곧아, 숨이 턱 막혔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세상은 더럽고, 타협은 일상이고,
양심은 가격표에 따라 흥정되는 시대인데.

하지만 윤동주는
“쉽게 씌어진 시가 부끄럽다”고 말했고,
“나는 나에게도 버림받았노라”고 고백했다.
그 말들이 가슴 깊숙이 들어온 건,
그가 옳은 말을 해서가 아니라,
나도 어렴풋이 그런 무게를 안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는가.
말 한마디의 정직함이 기회를 밀어낸 적도 있었고,
조심했더라면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 순간들도 있었다.
가끔은, 그때처럼 살지 못하는 나를 애써 외면하며 잠이 들었다.

그 모든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건 오직 하나,
“그때 나는 나에게 떳떳했는가?”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다른 누군가의 기준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다.
그저 ‘내 안의 어떤 침묵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세상은 종종 "그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나는 가끔 그것이 너무 싫다.
그 '괜찮음'이 나를 조금씩 무너뜨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윤동주를 다시 읽는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 잠깐 등장했던 이름,
몇 줄 외우고 지나쳤던 시였지만,
이번엔 다르다.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 보니, 자꾸 나를 닮은 사람이 그 안에 서 있었다.
지나온 내 감정들과도 겹치고,
내가 고민해온 삶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었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윤동주를 알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야, 제대로 마주 앉은 것뿐이다.

그는 총을 들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지만
단 한 줄의 시로, 시대와도, 자기와도 싸워냈다.

잔인한 시대 속에서
슬프도록 순수했고,
조국을 사랑했고,
끝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죽어간 청년.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나 역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비겁하게 웃었던 순간들,
편하게 살고자 했던 순간들,
외면했던 어떤 진실들.

그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는 사랑 이야기도 남기지 못했다.
가족과의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이국의 감옥에서, 조용히 죽었다.

그의 시신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묘비조차 고요한 언어로 침묵하고 있다.

한 권의 시집도 펴내지 못한 채,
그는 사라졌다.
우리가 읽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친구의 손으로 세상에 나온,
한 청년의 유고이자 마지막 기도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의 시 앞에 돌아와 선다.
순한 말로, 치열하게 자신을 견딘 사람.

그가 묻는 ‘부끄러움’은
남들의 평가에서 오지 않았다.
그가 가진 신념과 실제 삶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그는 괴로워했고, 고백했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조용한 고통,
그것은 그의 시를 맑게 했고, 삶을 깊게 만들었다.
그가 겪은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도덕적 불협화음'의 깊은 틈이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그는 이미 사라졌지만,
지금도 그는 내 안에서 묻는다.

“오늘, 너는 너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