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와 메이에게 안부를 전해줘

by 노경문

“Governments should be afraid of their people.”


스물다섯의 여름,

나는 호주 멜버른 외곽의 닭 공장에서 일했다.

고된 노동에 지쳐 있을 무렵,

제이와 메이를 만났다.


그들은 홍콩에서 온 연인이었고,

내 워킹홀리데이 쉐어하우스의 호스트이자

닭 공장 단기직의 브로커였다.

나보다 몇 살 위였지만,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낯선 땅에서 우리는 매일 밤 술을 마셨다.

맥주, 와인, 그리고 싸구려 소주 비슷한 술.

일은 고됐지만 웃음은 늘 넘쳤다.

제이는 무뚝뚝했지만 다정했고,

메이는 꼼꼼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로 정겹게 웃었다.

그들의 영어는 유연했고,

생각은 단단하고 명확했다.


그들은 또렷하게 말했다.

“우리는 중국 사람이 아니야. 우리는 홍콩 사람이야.”

농담이 아니었다.

당시는 2014년 민주화 시위 직전,

영국 반환 이후의 무언가가

진지하게 그들의 눈빛에 고여 있었다.


나는 그저 듣는 사람이었다.

컨베이어에서 내려오는

닭가슴살을 자르고, 포장하고,

지친 몸을 씻은 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자유로웠다.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했고,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겼다.

일할 땐 성실했고,

퇴근 후엔 한국인처럼 술을 즐겼다.

그런 문화는 이상하게도 동질감을 줬다.

몇 년 뒤 중국에서 유행한 '탕핑(躺平)'

무기력하게 눕는 삶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며칠 전, 칼럼 하나를 읽었다.

아마 홍콩 출신 기자가 쓴 글이었을 것이다.

“홍콩이 무너지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2024년 기준, 세계 행복지수 147개국 중 88위.

4년 연속 하락,

집계 이래 최저 순위라고 했다.


국가보안법 이후,

홍콩의 민주당은 해산 위기에 처했고

지식인들은 국외로 떠났다.

학교에선 애국주의 과목이 주입되고,

자살률은 상승하고,

청년실업은 심화되고 있다고 했다.

소리 없는 해체,

그리고 멈춰버린 미래.


나는 다시 그 여름을 떠올렸다.

고작 두 달이었지만

매일 그들과 밥을 먹고, 일하고, 웃었다.


그들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였다.

뉴스 화면 속 시위대,

검은 마스크, 하늘을 향한 손, 외침과 눈물.

어떤 날은 무표정한 지하철 속 사람들 속에서도

그들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조슈아 웡과 네이선 로를 떠올린다.

2014년 우산 혁명,

2019년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그건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젊은 날, 제이와 메이와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청춘은 시위를 선택했다.

모두가 동의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그 용기를 기억했다.


“저는 경찰과 맞서거나 파괴를 하려고 거리로 나서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부의 잘못에 항거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이 자기네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 뉴욕타임스, 〈홍콩의 마지막 편지〉 중에서


이 문장을 읽고 잠시 멈췄다.

닭공장에서 돌아와 맥주를 나누던 그 여름,

제이와 메이가 이 말을 들었다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우리는 다르지만,

그 뜨거웠던 이십대의 감정만큼은

같았다고 믿는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우산혁명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났다.

단순히 시위에 감동해서가 아니었다.

그 화면 어딘가에

제이와 메이의 그림자가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큐에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그들이 있었으리라 믿는다.

말을 아꼈지만 분명했던 눈빛,

“우린 중국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던 그날의 목소리.

그건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존엄에 대한 고백이었다.


그들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세상은 많이 변했고,

나 역시 그 시절의 내가 아니지만,

그 여름의 맥주잔과 웃음,

그리고 말없이 함께 바라보던 밤하늘은

여전히 또렷하다.


그러니,

누군가 그들에게 닿을 수 있다면

꼭 전해주었으면 한다.


제이와 메이에게 안부를 전해줘.

그 여름을 기억하는 내가 여기 있다고.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