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한 시사평론 채널의 영상을 봤다.
보수 정치, 정치인 이준석, 의료계의 실패 공통점을 ‘관계의 형성 실패’로 묶은 분석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잘못된 정책보다, 관계 없는 태도가 실패를 낳는다.
사후 대응에만 급급한 보수 정치, 청중을 설득하려 하지 않은 이준석, 자기 말만 앞세운 의료계는 결국 옳은 소리를 해도 공감을 못 얻는다는 것이다.
반면, 충주 공무원(충주맨)처럼 평소 신뢰를 쌓아온 사람은 충주시의 부실 도시락 논란에도 '괜찮다'는 반응을 얻었다.
논란은 위기였지만, 기존 관계는 그의 방패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관계의 형성이라니. 그게 정말 이 모든 것을 가른단 말인가?
사유의 힘, 논리의 정당성, 사실의 두께보다 더 결정적인가? 진짜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진심보다는 익숙함을 믿고, 진실보다는 정서적으로 감당 가능한 이야기를 선택한다. 내가 믿고 강조해온 사유는 그 틈에서 점점 자리를 잃는다.
‘관계의 형성’이라는 말은 모호하면서도 잔인하다. 말은 쉽지만, 그 관계가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조차 판단할 기준이 없다.
그런데도 대중은 관계를 기억한다.
너무 자주, 오래 보여진 사람은 가식조차 '진짜 같음'을 입는다. 함께한 시간, 익숙한 말투, 예측 가능한 침묵이 진정성을 대신한다.
그 말의 구체성이 어디에서 드러나는가.
대통령 유력 후보인 이재명은 논란도 많고, 발언이 거침없어도 여전히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유지한다.
억울한 아웃사이더 서사, 하층민 출신, 성남에서의 성과, 검찰과의 충돌.
그는 실패마저도 자기 이야기 속에 끌어안아버린다.
그에게 관계란, 논리를 포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대중과 나눈 감정의 총합이다.
반면 백종원은 다르다.
십수 년을 이미지 메이킹 해왔고, 대중 친화적인 전문가의 상징이었다. 그는 위기 전까지는 대중 신뢰를 치밀하게 설계한 ‘이미지 전략가’였다.
하지만 정작 위기가 닥치자, 그 이미지를 지키기보다 한 발 물러섰고, 대중은 그를 방관자로 느꼈다. 진심은 감지되지 않았다.
웃으며 가르치던 그의 말은 더 이상 사람들의 체온에 닿지 않았다. 관계는 있었지만, 그것은 일방적인 신뢰 설계였지, 정서적 교감이 아니었다.
트럼프를 떠올린다.
그가 ‘부활의 화신’이 된 이유는 옳기 때문이 아니라 ‘한결같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막말했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중은 그것을 ‘가짜가 아니다’라고 믿는다.
그의 언어는 무례하지만 정직하다. 그는 특권층이지만, 말투만큼은 거리의 언어다. 그가 지지자와 맺은 관계는 계약이 아니라 감정적 동맹에 가깝다.
그래서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를 감싸고 보호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위기에서 드러난다. 위기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관계의 진위를 드러낼 뿐이다. 진심은 위기에서 방패가 되지만, 설계된 이미지는 방패인 척하다가 깨진다.
관계를 형성했다고 모두가 살아남는 건 아니다.
어떤 관계는 '관계자본'이고, 어떤 관계는 '신뢰자본'이다. 관계자본은 감정적 유대를 기반으로 빠르게 형성되지만, 위기에서 휘청일 수 있다. 반면 신뢰자본은 느리게 쌓이지만, 위기에서 단단하게 작동한다.
백종원의 경우, 십수 년간 관계자본은 풍부했지만, 그것이 신뢰자본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대중은 그를 잘 알고 있었지만, 믿고 따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반면 트럼프나 이재명은 관계자본을 넘어서, 지지자와 일정한 '신뢰의 내러티브'를 공유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믿기보다, 그들과 '함께 있다'고 느낀다. 이것이 생존의 차이를 만든다.
이재명은 위기 속에서 더 단단해졌고,
백종원은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
생각은 여기서 브랜드 정치와 인간 서사로 이어진다. 정치인은 이제 정책이 아니라 캐릭터다. 정책은 검색하면 나오지만, 캐릭터는 체험으로만 인식된다.
브랜드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하나의 서사를 가진 인간이어야 비로소 정치가 된다.
트럼프, 이재명, 그리고 백종원까지.
그들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갈리지만,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입고 있었는지는 분명하다.
정치는 브랜드로 포장된 인간 서사의 경쟁이다. 그리고 대중은 이 서사를 보고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어떤 브랜드는 위기에도 단단해지고, 어떤 브랜드는 아무리 포장해도 울림이 없다. 관계자본이 진실을 이기고, 서사가 정치를 만든다.
대중은 오래전부터 정책보다 이야기에 반응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도, 반복되는 익숙한 패턴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유의 힘을 믿는다.
관계의 형성은 빠르고 유효하지만, 때로는 진실을 가리는 연막이 되기도 한다. 반면 사유는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대중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사유는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관계자본이 살아남는 법이라면, 사유는 스스로 서는 법이다.
설령 그것이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나의 신념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내가 주체적으로 이 시대를 견디는 방식이다.
사유는 성숙한 시민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관계가 생존의 도구라면, 사유는 존재의 태도다.
나는 그 태도를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