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이라는 서랍 열쇠

멈추지 말아 줘요. 리듬 속의 그 춤을

by 유호현 작가

20대 초반. 마이클 조던의 모든 경기를 다 챙겨봤다. 그 시절 에어 조던의 경기를 직접 봤던 '라떼'들은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있다. 그 전설적인 '더 샷'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마무리까지 완벽했던 그에게 기립 박수를 쳤다. 그의 은퇴와 더불어 난 미국 농구에 대한 모든 관심을 꺼버렸다.

그 조던보다 열 배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완선 누나다.

조던이 하늘을 날았듯, 그녀도 무대 위를 이곳저곳 날아다녔다. 난 그렇게 우아한 비행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에어 완선'이라 불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예쁜 외모에 끌렸다.

그러다가 우뢰매에 한참 빠져 살 때는 그녀가 전사 같았다. 그렇게 춤을 추며 노래하는 모습이 눈물 나게 멋졌던 것이다.

내가 중학생이 되자 김완선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가 히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의 춤은 또 얼마나 발랄하던지. 이때는 설레는 느낌으로 좋아했다.

혹시 김완선의 애수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이때는 시나 소설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그 춤이 시 같았다. 절제된 동작과 손짓을 보며 시 낭송을 수어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시절, 난 그렇게도 그녀를 좋아했다.


그러다 그녀는 해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나 역시 물질적 어려움을 겪으며 연예인을 좋아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잊고 지내다 다시 컴백했다고 듣긴 했지만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이후 사회생활에 치이며 그 이름을 잊고 지냈다.

김완선을 좋아하던 꼬꼬마가 46세가 되었다.


일년 전, 누가 중년인 내게 묻는 것이었다.

"연예인 누구 제일 좋아해요?"

난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김완선 누나요."

상대방은 국민 여동생이나 월드 클래스 아이돌을 기대하기라도 했는지 재미있다며 웃었다. 그리고 덩치 큰 중년이 연예인보고 '누나'라니 일반적인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신기하면서도 미안했다.

수십 년 잊고 지낸 주제에 파렴치하게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다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대답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의 난 무언가를 할 때 자신감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부르던 노래 가사.

"멋이 넘쳐흘러요. 멈추지 말아 줘요. 리듬 속에 그 춤을."

그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아내에게 청혼할 때도 그랬다. 내 청혼을 거절할까 두려웠다. 그때도 응원가가 필요했다.

"멋이 넘쳐흘러요. 멈추지 말아 줘요. 리듬 속에 그 춤을."

어떻게 보면 우리 결혼 생활의 축가는 김완선 누나가 불러준 것이다.

그런데 너무 자주 흥얼거리다 보니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김완선 누나의 노래인 줄 알면서도 모른 채 살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난 내 스타를 잊은 적이 없었다.

난 왜 그녀의 노래를 그처럼 응원으로 여겼던 걸까? 그건 단순한 끌림을 넘어 좋아하게 된 계기와 관련이 있었다. 전사처럼 보였던 그 시절. 주저하지 않고 춤추고, 두려움 없이 노래하던 그 모습. 나이가 들수록 이 말은 익지 않고는 몰랐던 깊은 맛처럼 천천히 후숙 되는 메시지 같았다.

바로 그날, 유튜브로 예전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마치 오래된 서랍을 여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다양한 관점으로 좋아했던 그 기억들이 모두 살아났다. 새벽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아내의 잔소리를 들었다.

"내일 출근 안 해?"

아내가 잘 때쯤 호가든 한 캔을 아주 조심스럽게 땄다.

감히 맥주를 마시며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두 번 돌려봤다.

나 덕분에 김동률과 루시드폴을 좋아하는 아내도 그녀의 무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청룡 영화제에서 정말 멋있었다며 꼭 보라고 권했다. 이미 봤지만 못 본 척 손뼉 치며 보았다. 여전히 이렇게 멋있다니.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오래된 서랍을 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너무 생생해서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어쩌면 김완선 누나는 내가 자라온 감정의 기록이었다. 예쁜 사람에서 전사로, 또래 친구에서 시인으로, 나의 응원가로. 결국에는 서랍을 여는 열쇠로.

그녀를 오랜 시간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만의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사람의 감정이 자라온 방식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감정이란 것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라나는 것이며 때로는 '멈춘 듯' 숨었다가 다시 열리는 서랍처럼 조용히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노래가 참 명곡이다.

"멈추지 말아 줘요. 리듬 속에 그 춤을."


나는 바란다.

나의 삶이 리듬 속에서 계속 춤출 수 있기를.

그래서 내 삶도 누군가의 응원가가 될 수 있기를.

나의 스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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