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소 곁을 맴도는 새끼
2011년, 강원도 횡성군.
구제역으로 인한 소들의 살처분이 시작되었다. 한 어미소에게 근육이완제 석시콜린이 주사되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새끼가 젖을 달라고 다가왔다. 어미는 자연스럽게 젖을 물렸지만 약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 것을 느꼈다. 끝까지 젖을 주기 위해 어미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버텼다. 만족할 만큼 젖을 먹은 새끼가 입을 떼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즉사했다.
보통 이 주사를 맞으면 1분을 넘기지 못하지만 이 어미소는 무려 3분을 버텼다. 영문도 모른 채 새끼는 어미 곁을 맴돌았다고 한다.
오래전 뉴스를 읽으며 어머니가 떠올랐다.
내가 네 살 때, 아버지가 공장을 인수하며 우리 집은 경제적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어머니가 사모님 소리를 이제 막 듣기 시작할 무렵 강제로 이혼당하셨다.
난 어머니에 대한 나쁜 이야기만 듣고 자랐다. 그래서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오실 때 늘 외면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영원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공장은 부도났다. 가전제품에 차압 딱지가 붙고 전기도 끊겼다. 계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우리 집이 가장 비참했던 그때,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어머니는 재혼할 기회가 있었지만 우릴 위해 기다리셨다. 우리가 계모에게 쫓겨나면 도피처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자신에 대한 순애보로 착각하고 감동했다. 가장 부유할 때 쫓겨난 어머니는, 가장 가난할 때 돌아오셨다.
어미소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무슨 발명품을 개발한다며 베트남으로 떠났다. 무한 동력으로 작동하는 보일러.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겠다는 대단한 발상이었다. 절대 멈추지 않는 따뜻함을 만든다며, 실제로 지켜야 할 따뜻함을 남겨두고 떠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동안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살았다.
중학교 1학년 때 내 키는 166cm였지만 2학년 때는 180cm까지 컸다. 친구집에 자주 놀러 가서 멸치와 계란을 많이 먹은 덕분일까? 어쨌든 하복이 너무 작았지만 새 옷을 사달라고 말할 염치가 없었다.
"아버지 셔츠 입고 갈게요. 키 계속 클 건데 아깝잖아요."
어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계시더니,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줄래?"
하지만 어머니는 연기를 잘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 순간에도 어미 소의 다리는 떨리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될 무렵 누나가 가족 부양을 책임지며 약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철없게도 놀이공원에 가고 싶은 티를 그렇게 냈다. 지금은 이월드라 불리는 그곳은 과거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어머니는 아들과 놀이공원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며 둘이서 가자고 하셨다. 내게 자유이용권을 끊어주셨고 따라다니기만 했다.
나는 호기롭게 바이킹부터 탔다가 공포에 탈진하는 것 같았다. 이후로는 범퍼카, 회전목마만 타면서 겸허하게 놀았다. 덩치 큰 놈이 그렇게 노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꽤 우스우면서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 막 든다.
나는 어머니도 같이 타자고 계속 권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거 정말 별로야. 지켜보는 것만 해도 좋아."라고 말하셨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들을 조금만 더 유의해서 봤더라면 그 발연기를 믿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좋아하면서...
어머니 나이에 도달하면 무언가 한 단락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나이를 넘어서자 비로소 시작이었다. 나는 아직 너무 젊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 나이에 죽었다니.
그 나이에 그랬다니.
나는 사랑받고 크진 못했다. 그러나 사랑받고 자라고 있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기다려주셨고 우리를 위해 돌아오셨다.
그런 위대한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그 사랑은 이제 뿌리가 되어 지금도 나를 자라게 한다.
한때 난 죽은 어미소 곁을 맴돌며 울부짖는 새끼소였다. 그 사랑이 얼마나 거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 채 상실만 부르짖었다.
하지만 이제 그 곁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웃고 있던 그 표정 뒤에 얼마나 많은 떨림이 있었는지를. 그 다리가 끝까지 사랑하려는 마음 때문에 떨리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는 내 인생 최초의 라이킷을 찍어준 구독자다.
그 구독자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기에 나도 나를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