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1 괴기 산장, 5장 동네와 바깥세상

5장: 동네와 바깥세상

by 글빛누리

산장을 벗어나면

담배밭은 우리가 산장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길에 만나는 첫번째 자연이었다. 초록빛과 갈빛이 교차하는 이 밭에서는 계절의 숨결이 잎맥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담배밭의 넓은 잎사귀들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면 마치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뒤로하고 오두막 옆으로 난 좁은 흙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침내 동네의 첫 번째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장에서 내려오는 길은 언제나 해방감으로 가득했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깨에 짊어졌던 보이지 않는 무게가 조금씩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산장의 음산함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세상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다시 보통 아이들이 될 수 있었다.

학교를 다녔기에 동무들도 있었고, 작은 구멍가게와 문방구도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우리를 보면 "어디서 왔냐?"고 물었지만, 우리는 그저 "위쪽에서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산장 이야기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았고, 믿는다 해도 더 무서운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뽑기 아저씨

내려오는 길은 여대 앞 넓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그 광장은 동네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거기에서 사방치기, 줄넘기,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등 온갖 종류의 놀이를 즐겼고 학교가 파하고난 오후 시간에 그곳에 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라는 것이 따로 없었던 그 시절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놀 공간이 있으면 놀이를 만들어서라도 함께 놀았다.

그 길을 따라 한참 내려오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뽑기 아저씨와 마주쳤다.

"야, 오늘은 운수 대통인 날이다!" 뽑기 아저씨는 항상 그렇게 외치며 우리를 반겼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가득했고, 낡은 모자를 삐딱하게 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뽑기 아저씨는 동네의 명물이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을 하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아이들은 그의 존재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가 증명해 주었으니까.


달고나의 마법

설탕과 소다를 뜨거운 국자에 녹여 만든 달고나는 아이들에게는 마법 같은 존재였다. 뽑기 아저씨의 손놀림은 예술이었다. 설탕이 캐러멜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했다. 소다가 들어가는 순간 보글보글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달고나를 구입하면 별, 하트, 우산, 동그라미 등 다양한 모양이 찍혀 있었다. 그 모양을 따라 핀으로 침을 발라가며 깨지지 않게 도려내면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양은 신기하게도 거의 마지막 순간에 툭 하고 전체가 깨져버리는 마술을 부리는 바람에 모양을 온전히 오려내는 데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희망을 품고 조심스럽게 핀을 움직였다. 때로는 친구들이 둘러싸고 응원해 주기도 했다. "조심해, 조심해!" "거의 다 했어!" 하는 소리들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만화책의 세계

하지만 뽑기의 진짜 매력은 다른 데 있었다. 거기서 뽑기를 한 번 하면 땅바닥에 흩어져 있던 만화책들을 원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1원짜리 동전 몇 개로 누나와 나는 마음껏 만화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뽑기 아저씨는 큰 비닐봉지에 만화책을 가득 담아 가지고 다녔다. 이미 몇 번을 읽어서 외울 듯했던 30권 남짓의 오래된 만화책은 그래도 읽을 때마다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나는『철인』, 『아톰』등의 로봇 만화를 탐독했고 누나는 『비밀의 화원』, 『엄마찾아 삼만리』같은 순정만화를 좋아했다. 그 만화책들은 우리에게 괴기 산장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는 창문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용감했다. 귀신이 나와도 무서워하지 않고, 악역과 당당히 맞섰다. 나는 그런 주인공들이 부러웠다. 우리도 그들처럼 용감할 수 있다면, 산장의 기괴한 일들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누나, 나도 아톰이 있으면 좋겠어." 내가 말하면 누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귀신들도 무서워하겠지?"


두개의 세상

동네와 산장 사이를 오가며, 우리는 두 개의 세상을 경험했다. 하나는 따뜻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세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차갑고 기괴한 공포의 세상이었다. 우리는 그 경계에서 자라났다.

뽑기 아저씨의 웃음소리, 만화책 속 영웅들의 모험, 동네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 방천에서의 자유로운 놀이...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삶의 활력소였다. 산장의 어둠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빛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라났다. 괴기 산장의 그림자 아래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작은 희망들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언젠가는 그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키워가며.

동네로 내려가는 길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매번 산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강해져 있었다.

뽑기 아저씨가 항상 외치던 그 말처럼, 어쩌면 매일매일이 정말로 "운수 대통인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작은 기쁨을 찾아내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었으니까.


수,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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