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방천에서 배운 삶과 죽음
동네 어귀를 지나면 방천이 나왔다. 금고강 지류인 그 방천은 내 어린 시절 삶의 가장 풍성한 체험의 장소였다. 학교를 오갈 때마다 건너야 했고, 놀이터이자 때로는 두려움의 장소이기도 했다.
봄에는 개구리 소리가 요란했고, 여름에는 맨발로 들어가 물장난을 쳤다. 가을에는 단풍잎이 물 위에 떠내려갔고, 겨울에는 얼음이 얇게 얼어 깨뜨리며 놀았다. 방천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어서 그 그늘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만화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해가 지면 방천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물소리는 으스스했고,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는 마치 거대한 괴물의 팔처럼 보였다. 그럴 때면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산장으로.
그때는 어린 죽음이 많았다. 의료 시설도 부족했고,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방천에는 돌다리 사이로 가마니가 듬성듬성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가마니 안에 죽은 아이의 시체를 넣었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우리가 들을까 봐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아이들 귀는 밝았다. 누구네 집 아기가 아프다더라, 누구네 집에서 큰일 났다더라 하는 소식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우리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했다. 엄마도, 누나도, 나도 모두 살아있고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렴풋이 느꼈다.
방천의 겨울은 미끄러워 국민학생이 건너가기가 어려웠다. 얇은 얼음이 끼면 더욱 위험했다. 언뜻 보기에는 단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체중을 견디지 못하는 얼음들이 많았다.
동네 형이 나를 건너게 해준다고 업고 가다가 그 차가운 물속에 둘 다 빠져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월의 방천 물은 뼈에 사무치게 차갔다. 옷은 금세 얼어붙었고, 누나와 함께 울면서 집까지 가는 길은 내 어린 시절 가장 끔찍했던 기억 중 하나였다.
결국 벌벌 떨며 젖은 몸으로 집에 돌아가 출근하려던 엄마를 경악케 했던 일.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셨다. 엄마는 나를 꼭 껴안으며 온몸을 확인하셨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야.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와 따뜻한 손길이 얼어붙은 내 몸을 녹여주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그날 밤 나는 열이 심하게 났다. 엄마는 밤새 내 곁을 지키며 물수건으로 열을 식혀주셨다.
뜨거운 여름날, 나와 동무들은 개천에 들어가 물장구치고 떠내려오는 똥덩어리를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웃고 떠들었다. 그 시절 개천은 하수도 역할도 했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놀이터였다.
갑자기 깊어지는 곳이 있다는 걸 몰라 혼자 죽을 듯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가 있었다. 물이 코까지 차오르고, 숨을 쉴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죽는구나 싶었다. 온 세상이 물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야가 와이라노!"
동네 형이 소리치며 나를 건져주었을 때, 나는 내 인생 최초의 죽음을 경험했다고 느꼈다. 물에서 나온 후에도 한참 동안 가슴이 뛰었고,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하늘이 더 파랗고, 나뭇잎이 더 푸르고, 바람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사람은 왜 죽어요?"
엄마는 한참 생각하시더니 대답하셨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 거야. 그냥 그런 거야."
"그럼 우리도 죽어요?"
"그래, 하지만 아주 오랜 후의 일이야. 그러니까 지금은 걱정하지 마."
그 대화 이후 나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산장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들도 어쩌면 죽은 이들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밤이 되면 방천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속삭임처럼 들렸고, 가끔은 그 소리들이 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방천은 내게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준 교실이었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를 몸소 체험하게 해주었다.
그 차가운 물속에서, 그 더러운 개천에서,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기억들이 되었다.
방천은 흘러간다. 시간도 흘러간다. 하지만 그 기억만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맑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