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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걜 만나고부터 못 견디게 외로워

by 장민혜

이소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외로움이 차오를 때마다 듣던 곡이다. 버스 좌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들었던 노래다. ‘우리’라는 낱말로부터 ‘너’와 ‘나’라는 낱말로 분리되기까지 나의 마음은 수십 번도 더 오락가락했다. 그는 자신을 닮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었고, 성격도 고양이 같았다.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마음을 알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명백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사랑한단 말도, 좋아한단 말도 하지 않았다. 흔하디흔한 말을 듣지 못했으니 나는 사랑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분명 함께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외롭단 생각이 들었다. 그 외로움은 온전히 나의 몫인 듯했다. 그의 입장을 들어본 적 없으니 더욱더 그러했다. 마지막으로 싸우던 순간에도 서로의 마음을 어설프게 따졌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사랑을 의심하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는 결국 ‘나’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고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저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는 듯해. 그건 내가 바라는 대로 해 주지 않아서야.’ 따위의 생각들. 나를 중심으로 사고가 이어지면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세상 속에서 나는 구성품 중 하나니까. 그 하나를 위해서 세상이 돌아가진 않는다. 부품이 된 존재는 다른 부품과 맞물려야지만 삐거덕 소리를 내며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의 나는, 세상이 나를 억울할 정도로 싫어한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나의 연인 역시 나를 외롭게 하는 존재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만나고부터 못 견디게 외로웠다. 사랑은 나만 한다고 여겼다. 그 친구의 날 향한 마음은 사랑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정의했다.


물론, 지금도 그 친구가 나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른다. 서로 소리를 지르며 끝내고야 말았던 마지막 통화. 그 통화에서도 나는 그 친구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으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이다. 그 친구는 그 친구만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했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도 있었다. 늘 무뚝뚝한 성정이었기에, 나를 위해 급하게 꽃집을 찾아 사다 준 꽃다발이라거나, 밤을 꼴딱 새우고도 내가 작업 중이던 카페로 찾아와 케이크를 건네고 가던 무심한 태도. 그건 그 친구만의 사랑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재미없는 현장에도 무엇이든 함께하려고 했던 그를 생각하곤 한다. 온종일 걷고도 우리는 행복했는데. 우리라고 명명된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랬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후회할 일이 없을 거라고 하면서도, 결국 다음날 바로 후회를 했지만, 이미 그와 나의 거리는 멀어졌을 뿐이었다. 눈물은 흐르는데, 왜 울어야 하는지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헤어지고 나서 꼬박 9개월을 술만 마시며 보냈다. 알코올 중독 치료까지 겸했지만,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친구를 잃은 상실감은 어떤 행위로도 치유할 수 없었다. 9개월 동안, 약 300일에 가까운 시간을 매일 술을 마시며 보냈다. 취할 만큼 취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 뻔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싸늘한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추억 속에서만큼은 아주 조금이라도 다정했던 모습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당시의 나는 모든 걸 잃어가고 있었다. 더는 인간 같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울증 치료만 하기에도 바쁜 시간을 알코올에 돈을 탈탈 쏟아부으며 동생을 붙잡고 그가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 확률 같은 것을 쟀다. 물론, 그는 이후로도 단 한 번도 연락 온 적이 없었다. 무심코 연락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딱 한 번, 같이 식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에게 하지 못한 말을 하고 싶었다. 내 30대의 온전한 마음을 모두 쏟아부은 건 너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의 30대는 온통 그로 얼룩져 있다.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인 ‘결혼’이라는 게 내 삶으로 들어온다면 바로 그 친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먼저 이별을 이야기하고, 내가 먼저 매달리고, 내가 먼저 모든 것에 서툰 모습을 보였기에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 그치게 되었지만. 바스라지는 마음을 애써 붙잡고 시간을 돌이키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시간은 흘러갈 뿐 돌아갈 순 없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는 몇 번이고 삶을 되돌렸던 것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는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입꼬리부터 웃던 습관도, 나보다 한마디쯤 큰 그 손이 전해주던 온기가, 고양이처럼 낯을 가리던 모습도, 그냥 내 이야기를 조잘거리고 있으면 들어주던 모습도 여전한지 묻고 싶다. 이제는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외로움 속에서, 고독 속에서, 그라는 존재 안에 갇혀 헤어나올 수 없다.


여전히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렇게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겠지. 흘러간 세월이 야속해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겠지. 기울어진 저울 위에서 아등바등거리며 있는 나 자신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오래전으로 흘러가 버린 우리의 시간에 대해 곱씹는다. 우리가 함께 미래를 이야기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서로의 온도가 다르다고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사랑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게 한 것은 다 나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우리의 관계에서 먼저 이별을 꺼낸 건 나의 입이었으니까. 그리워하는 것조차 그에게 실례일까 봐 마음 한구석 조용한 방에 가둬놓았다. 그러나, 결핍으로 가득 찬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 그 길로 걸어가고 싶어진다. 그 길의 끝이라면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멀고 먼 좌절의 늪에서 널 향해 돌아가는 나의 궤도는 한 번쯤은 너와 마주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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