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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I fall in love too easily

by 장민혜

처음에는 이성으로서의 호기심도 없었다. 이성으로서 호기심이 있었더라면, 그 앞에서 애인이 생겼다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애인과 한 달 만에 헤어졌다는 이야기 역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친구의 취향은 쳇 베이커였다. 쳇 베이커를 좋아하며, 글을 쓸 때마다 쳇 베이커의 음악을 감상한다는 친구. 그 친구에게 호기심이 생긴 뒤로 나의 첫 재즈 음악가는 쳇 베이커가 되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세상을 확장시켜준 사람을 절대 잊지 못한다. 그 친구의 이름이 가물가물한 때도 많다. 그 친구의 이름을 떠올리려 하다가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맞을까……, 하고 나조차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쳇 베이커를 좋아하는, 그리고 글을 쓰는 친구. 첫 번째 호기심은 여기까지였다. 적어도 헷갈려하기 전에는.


어느 날부터인지 모르게 나는 그 친구의 행동에 의미 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나를 챙겨주는 사소한 행위마다 그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화용론적인 의미를 찾으려 했다. 이미 의미론과 통사론은 통과한 상태였다. 그 친구가 나에게 그 행위를 하는 데에는 ‘어떠한 의미와 기능과 그 모든 것이 합해진 형태’라고 생각하며 그 친구의 마음을 오해했다. 그러나, 그 친구의 마음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알기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친구는 이미 나의 마음을 눈치챈 데다, 나의 마음을 받아줄 여력이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그 사람이 좋았지만 그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것은 나뿐이었고, 무언가와 헤어질 준비를 하는 것도 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아주 가끔 그 친구 생각이 난다. 쳇 베이커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때마다. 쳇 베이커의 음악만이 전부인 사람처럼 그의 음악을 곱씹은 적이 있다. 쳇 베이커의 초창기 노래부터 코카인에 중독돼 발음이 뭉개지던 말년의 노래까지. 어느 순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쳇 베이커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인생이 음악속에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 인생은 처절히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와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자 하는 나의 욕구와 닮아 있었다. 내가 가진 욕구의 뒷면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 친구를 아주 가끔 떠올린다. 그 친구의 이름을 소리내 발음해 보는 일도 적지 않다. 단단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다. 아주 가끔,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걸려오길 바라기도 한다. 그게 너였으면 한다는 바람도 있다. 연애를 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 그냥 요즘 너의 취향이 알고 싶다는 뜻이다. 어떤 음악을 듣는지, 네가 도달한 목표에 다다른 느낌은 어떤지, 너는 행복한지.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는 뜻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많은 것을 바라면 바랄수록 사람의 마음은 비참해지기 마련이니까. 기대를 품은 것이 커다랗게 변할수록 반작용이 심하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사실 쳇 베이커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을 꼽으라 하면 ‘Blue room’이다. 태블릿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해 놓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쳇 베이커의 세상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곡. 그의 투박한 듯하면서도 어느 경지에 다다른 듯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다. 지금까지 내 인생사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너무나도 쉽게 사랑에 빠졌고, 너무나도 쉽게 헤어졌다. 처음에는 만난 상대들을 원망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선택한 것은 나였으니까. 나의 선택에 따라 움직인 사람들을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을 선택한 나 자신의 안목을 후회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까. 나에게는 악인이었고, 악연이었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인연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더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었다.


“미안해. 가지고 논 건 아니었어. 그건 진심이야.”


어느 말이 진심이라는 뜻이었을까? 미안하단 말이? 아니면 가지고 논 건 아니었다는 말이? 두 문장을 뒷받침하기에 ‘미안하다’는 말은 너무나도 짧았다. 더욱 긴 표현이었더라면, 더욱 긴 말이었더라면 다르게 느꼈을 텐데. 텍스트로 전해진 문장을 곱씹으며 “너는 뭐가 미안한 것일까”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그와 처음 알게 되었던 그때, 그가 나에게 베풀었던 엄청난 양의 다정함에 감동받은 적이 있다. 도대체 그 무엇이 그를 그렇게 다정하게 했는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끝내 알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나에게 다정했던 이유라는 것. 그의 속마음을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다. 가난하게 글써서 벌어먹고 사는 내가 불쌍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글에 대한 팬이었던 것인지, 그마저도 아니면……. 사실 추측할 수 있는 요소가 별로 없다. 나에게 진심을 다하던 순간만큼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더욱 힘들 테니까. 그의 모든 순간이 꾸며진 것이라면……. 나는 크나큰 절망을 맛보게 될 테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서로가 어느 순간 진심이었지만, 그 타이밍이 엇갈렸다는 말로 포장하는 것뿐이었다.


엄마의 암 투병이 막 시작되었을 때, 그 친구에게 고마웠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 메시지를 보냈다. 연락처도 외우지 못했고, 오픈 카톡방만 덩그러니 놓인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읽었다는 표시만 사라졌을 뿐. 그는 전후사정을 아예 몰랐을 것이다. 그에게 고마웠다는 말은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거짓으로 고마운 게 아니었다. 엄마의 생사를 두고 절규하고 있을 때, 그 절규가 시작되기 전 가장 찬란하던 순간에 도움을 준 사람이 그였으니까. 그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다른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주 가끔 봄날의 개나리를 보면 그를 떠올린다. 그는 내게 개나리 같은 존재였다. 계절이 바뀌었음을 누구보다 빨리 알려주는 존재이자, 밝은빛으로 나를 물들여주는 존재. 그는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그런 존재였다는 것을. 그 당시 절망의 늪에 빠진 나에게 너는 유일한 희망이자, 소망이었다고. 언젠가는 전할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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