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조의 한 구절이다. 여러 각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가장 원론적인 해석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앓는 마음. 상사병. 상사병으로 인해 깊은 밤까지도 잠들지 못하는 어떤 이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우즈의 ‘드라우닝’에서도 가장 마음에 콕 박히는 가사라 꼽으라 한다면 ‘다정한 말로 나를 죽여놓고 날 누이고 너는 떠나갔지’라는 구절이었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와 같은 결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다정함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때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모든 사랑은 양면성이 존재한다. 가장 불타오를 때 다정함은 나를 살리기도 하고, 가장 밑바닥까지 처박힐 때의 사랑은 나를 죽이기도 한다. 다정한 순간을 그리워하지만, 다정한 순간이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미 수렁을 본 사랑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 그건 수렁을 맛본 대상들이 더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다라……. 어찌 보면 말에 모순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행위. 그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옳지 않을까? 사랑을 하지 않는 행위는 사랑하다의 반대어가 될 수 있다.
어느 외국 학자의 동기부여이론에서 만족의 반대말은 불만족이 아니라고 했다. 불만족이 아니라, 만족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반대로 불만족의 반대는 불만족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이와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하다의 반대말은 사랑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사랑이 없는 상태가 아닐까. 사랑이 없는 상태는 물론 사랑하지 않는다와 맞닿아 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곧 사랑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세세하게 생각하고, 정의하고 사랑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좋으면 그저 좋은 감정에 취해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이 전부인 양 군다.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는 것은 호르몬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오랜 시간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그 마음은 어디서 비롯했는가. 이와 관련해서 긴 생각을 써 내려갈 수 있다. 나의 경우, 오랜 시간 한 사람만을 바라봤던 적이 있다. 그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나의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라는 점. 그는 연예인이었고, 무대를 할 때 가장 빛이 나는 사람이었으며, 그와의 접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단 한 번도 그와 접점 따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망했던 적이 없다. 오히려 그를 더 사랑할 수 없는 감정이 아쉬웠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를 동안,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는다고 할 동안 나는 그를 사랑했다. 어쩌면 그 사랑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내게 수많은 동기를 부여하는 존재였다. 더 열심히 살 것, 더 성실하게 살 것, 그가 나의 존재를 모른다 하더라도 나는 그 앞에서 떳떳한 존재이고 싶었다. ‘잠겨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밀려오라’라는 말처럼 그를 사랑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딱 그런 마음이었다. 그의 이름 세 글자에 잠겨죽어도 좋았다. 그런 만큼 그를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는다, 는 마음을 느꼈을 땐 정말 어느 날 불현듯 느낀 날이었다. 불시에 찾아온 사랑하지 않는다는 감정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10년 동안 사랑했기에 그를 사랑하지 않는 법 따위는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향해 기우는 마음을 두고 나는 나 자신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 어떻게 10년이란 세월을 두고 돌아설 수 있는 것이지? 어떻게 네가 변하니.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오래된 사랑의 기억은 서서히 나를 잠식했다.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하나둘씩 뭍으로 떠오른 것이다. 가라앉아 찾아볼 수조차 없었던 감정들이 끝내 돌아와 나를 되살리고 있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 사랑은 어느 순간 멈춘 것이 아니라 아주 느릿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은 순간, 다시 시작되는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의 사랑은 늘 그런 식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때, 다시 잠겨죽어도 좋으니 사랑은 내게 물 밀 듯 밀려왔다. 그 대상이 연예인이든, 연예인이지 않든 상관없었다. 감정이라는 것은 늘 그런 식으로 변덕스럽게 굴었다. ‘너’와 ‘나’가 행복했던 때로부터 감정이 변했을 것이라 믿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변한 마음이 돌아올 때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컸다. 어색했다. 사랑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어색했고, 사랑 앞에서 변한 나의 모습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나는 늘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상태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서툰 사랑이 길어질수록 나는 더 외로워졌다. 사랑이라는 것이 남기고 간 발자취에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놈의 사랑이 뭐기에, 나를 이토록 비참하고 처참하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한 가지 받아들여야 할 것은, 사랑을 하는 행위도 중독이라는 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감정을 나누는 행위는 결코 혼자서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중독성에서 비롯된다. 니코틴, 알코올 같은 것에만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위 역시 중독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하고, 사랑하지 않는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사랑은 이어지고, 사랑에 중독된 우리는 다정한 말에 깜박 속아 넘어가고야 만다. 사랑이라는 것은 늘 그런 식이다. 나도 모르게 찾아와 중독된 상태로 만들고, 그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감정이란, 우리의 사랑이란 것은 그런 식이었다. 쉽게 사랑에 빠지는 듯하면서도, 결국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복잡하게 정의내리려 한다. 복잡한 어떤 단어로도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진 않다. 사랑은 늘 우리를 죽이고 살리는 도구였다. 굳이 둘 중 하나로 가르자면, 나를 죽이는 도구였다. 사랑이란 녀석은 늘 그런 식으로 흘렀기에 이제는 받아들이려 한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드러 하던 날들. 그 날들 역시 사랑의 일부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