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평상시 서정적이고 우울한 가사만 골라 듣는 나라 하더라도, 행복한 노래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듣기만 해도 벅차는 감성을 가진 곡들. 이를테면 원위의 ‘베로니카의 섬’이라거나 ‘한여름 밤 유성우’ 같은 곡들. 작곡을 한 이는 원위의 베이시스트 기욱이다. 원위의 앨범이 나올 때마다 곡을 찾아서 듣고, 그들을 보러 팬 사인회, 공개 방송, 콘서트 등을 갈 정도의 헤비 리스너인 편이다. 그들의 곡 중에서도 내 취향에 맞다 싶으면 기타리스트 강현의 곡이거나 베이시스트 기욱이 작곡한 곡일 확률이 높다. 물론 내 최애는 이 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둘의 곡은 강한 자성을 지니고 있다. 에세이 첫 번째 곡으로 소개했던 곡은 원위의 ‘궤도’ 가사 중 일부다. 원위의 ‘궤도’를 듣다 보면 누군가의 주변을 끊임없이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며 맴도는 나를 떠올리게 된다. 원위의 곡 중에서 한 곡만 꼽으라 한다면 나는 당당히 ‘궤도’를 꼽는다. 스트리밍 횟수만 4000번에 달할 정도로 사랑하는 곡이다.
그런가 하면, 기욱이 쓴 곡들은 모두 벅찬 감성을 잘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어 날이 좋아 무작정 걷고 싶은 날 한 곡 반복으로 무한 재생을 하곤 한다. 앞서 언급한 두 곡 외에도 ‘바다에 적신 햇무리 반지’ 같은 곡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앞에서 반짝이는 윤슬의 순간을 포착한 듯한 아름다움이 담긴 곡이다. 이 곡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은, 벅차는 멜로디는 둘째치고, 노랫말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고요한 푸름과 바다 윤슬이 우리를 축복하잖아’라는 가사는 들을 때마다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 나를 변하게 한다. 기욱의 경우, ‘푸르다’는 표현을 사람에게도, 사랑에게도 자주 쓰는 편인데 그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가사라고 생각한다. 이 곡을 그렇게 좋아함에도 제목은 ‘베로니카의 섬’ 가사 중 일부다. ‘베로니카의 섬’은 들었을 때 살짝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베로니카의 섬’이라고 해서 우주를 노래하는 밴드가 어떤 식으로 우주를 표현했는지 궁금했는데, 우주가 아니라 어렸을 적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곡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마음만 통해 발을 동동 굴린 사랑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베로니카의 섬’은 바로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였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무척이나 내성적인 아이였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책상 밑에 몸을 구겨 넣고는 부모님이 사주신 세계전집을 읽으며 오랜 시간을 보내던 아이였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존재도 딱히 없었다. 단 한 번, 마음의 문을 열었던 적이 있었으나 그 아이들은 내가 했던 이야기를 남에게 전달하며 내 세상을 한 번 무너뜨렸다. 사실 그 후로도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깊게 사귀고자 하는 욕구는 없다. 언젠가 때가 되면 떠나갈 이가 친구라는 것을 아니까. 우리가 우리여서 관심사 공통선상에 있는 때라면 모를까. 관심사가 멀어지는 순간 친구라는 것은 허물어지는 모래성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그런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친구’라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단짝 친구인 ‘민재’다. 민재에 대해 자세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몇 없다. 다만, 우리는 하굣길에 즐겁게 손을 잡고 하교를 했고, 민재는 자신의 집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던 녀석이었다. 내가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들어가던 착한 심성의 아이가 바로 민재였다. 민재는 2학기 때 경기도권으로 이사갔다. 이후로 민재가 생각나 무작정 운 적도 있다. 민재는 나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겠지만, 나는 민재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가끔은 어떤 어른이 되었나 궁금하기도 하다. 서울에 살던 민재가 경기도로 이사 가고 난 후의 이야기가 알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키워드로도 민재를 찾을 수 없었다. 정말 순수했던 아이들의 사랑. 그 감정만 남은 채 민재를 추억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나는 ‘민재’라는 이름과 관련이 깊은 사람이다. 민재라는 이름을 또 떠올리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얼굴이 말갛고 하얗던 민재라는 아이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 학년에서 유행하는 게임은 ‘누구 좋아’ ‘나도 좋아’ 하는 게임이었다. 당연히 나는 인기가 없었고, 내성적이었고, 누구의 마음에 들 일도 없었으니 아무도 나를 지목하지 않았다. 나에게만 유독 장난을 잘 치던 민재가 그때 내 이름을 부르며 지목한 순간, 나는 너무나도 고마웠다. 반에서 유일하게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은 아이가 나였는데, 민재가 내 이름을 부른 순간 감동받았다. 10살 나이에 나는 민재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민재는 단순히 내 이름을 불렀을 뿐이었지만, 나는 말간 샌님 같은 같은 얼굴의 민재를 좋아했다.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부터 그는 나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민재를 짝사랑하는 일도 오래가진 못했다. 민재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선생님들께 민재의 근황을 물었지만, 어느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민재는 어디로 간 것일까? 전학도 아니라면, 민재는 어디로 가게 된 것일까. 그것이 너무나도 알고 싶었다. 앞서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의 민재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의 민재는 성이 다르다. 내가 기억하는 얼굴은 아주 어렴풋하기 때문에 SNS 등에서 찾아보려고 했지만, 민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끔 불현듯 궁금해지곤 한다. 나의 순수한 사랑을 받았던 민재들은 어디로 갔을까. 민재들은 잘 지내고 있는 것일까. 민재를 만약에라도 지금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린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서로의 기억 속 아주 일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인 존재끼리 나눌 수 있는 대화는 한정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에 더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일부의 이야기를 넘어 전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잘 지내고 있길, 언젠가 만약에라도 그들을 찾게 된다면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