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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천년이 지나 또다시 절망의 늪이어도 너를

by 장민혜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유효기간은 얼마인 것일까. 어떤 사랑은 사랑이라는 것이 끝나고 난 뒤에도 흔적을 남겨서 사랑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일까. 어떤 사랑의 상실 이후 찾아오는 더 깊은 사랑의 감정은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사랑에 대해서 궁금할 때가 많다. 왜 사랑이 현재 진행형에서 끝맺음을 지었음에도 감정은 유지되는 것일까. 일렁이는 감정은 주기적으로 찾아와 나를 괴롭게 한다. 같이 걷던 어린이대공원의 길도, 우리가 다녔던 대학교의 길 주변도, 광화문의 인근 거리도, 청계천의 거리도, 함께했던 시간은 짧았지만 기억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문득 그의 생각이 날 때면 나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내 불행 중에 행운이었던 그대’라는 ‘내 영혼의 스크래치’ 가사를 듣고 있다 보면 그는 내게 있어 ‘불행 중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순탄한 만남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을 맺어가는 이들과는 다르게 나는 늘 운이 좋지 않았다. 운이 좋지 않았기에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선택 권한이 없었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으나, 악인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를 구원하는 것은 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이루어져서 그 사람과 일생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내 불행 중 행운이었다. 행복이기도 했다. 행운과 행복은 단어의 뜻부터 용례까지 다른 쓰임을 가진다. 내 불행 중 다행이었으며, 행복이었고, 행운이었다. 그의 따뜻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행복해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나를 보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던 모습까지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아쉬운 건, 오랜 시간이 지나 그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를 떠올리려고 애써 노력했지만, 내가 사랑하던 그 시절의 겉모습만 기억이 날 뿐, 그의 목소리, 세세한 그의 습관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알고 있을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꽃다발을 안겨준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고양이를 키우는 그는 고양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꽃으로 꽃다발을 안겨줬다. 이십대의 연애 이후 십여 년 만에 한 연애에서 그는 사소한 것들로 나를 감동하게 했다. 나는 나의 사소함을 알아차리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는 한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게 됐다. 우리가 ‘연인’으로 묶이기 전에도, 서로가 서로의 연락처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서로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오랜 시간 나를 이곳에서 머물게 한다. 사랑의 순간은 지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


얼마 전 신형철 평론가의 강연을 들었다. 애도와 우울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저자와의 강연이었다. 그 자리에서 신형철 평론가는 이야기했다. 이별 역시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마음속에 담아두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발산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이별을 애도해 본 적이 없었다. 애도라는 감정은 나에게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했고, 굳이 이별에 필요한 감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감정을 발산하지 않고 속에 묵혀둔다면 그 감정이 언젠가는 폭발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오랜 시간 한 사람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떠올렸다. 그 날부터 나는 애도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영원이란 말은 아주 잠시뿐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잠깐의 사랑을 위해 우리는 영원을 말하고, 영원할 것처럼 군다. 영원이라는 건 인간의 삶에서 없는 존재임에도. 영원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면서도, 나는 영원을 믿고 살아왔다. 어쩌면 이 사람과는 영원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헛된 꿈을 꾸면서. 헛되이 부푼 꿈이 사라질 때의 절망을 느껴본 적 있는가. 나는 꽤 오랜 시간 그런 절망을 겪었다. 어쩌면 전화가 올지도 몰라, 어쩌면 연락이 올지도 몰라, 어쩌면 나의 소식을 궁금해할지도 몰라, 어쩌면……. 모든 것은 가정하에 이루어졌다. 그런 가정 속에서 나의 진실된 마음은 거짓으로 뒤덮였다. 정말 애도를 하는 것인지, 슬픔을 이겨내려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저 절망 속에서 버텨내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거짓을 믿으며 버텨내는 삶. 이 얼마나 비참하단 말인가. 끝난 사랑을 부여잡고 눈물 한 방울도 흘릴 수 없는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슬프단 말인가.


그래서 ‘천년이 지나 또다시 절망의 늪이어도 너를 사랑해’라는 가사를 좋아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는 내 안에 남아 있겠지. 나의 30대를 바쳐 사랑했던 사람으로. 나의 30대가 그로 가득할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다행이지 않았을까. 그를 사랑했던 것이 후회되지 않는 유일한 순간은, 그가 지금 가장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별빛을 잠시 훔쳤던 순간이 있었으니, 그건 나만이 아는 비밀일 터. 별빛을 쥐었던 손을 펴보면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이 빛의 속성이니까. 그를 사랑하고, 별빛을 훔쳤던 찰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안녕, 나의 별.

너를 훔칠 수 있어서, 네 빛이 따사로워서 나는 아직 널 잊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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