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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뿌옇게 난 흩어져도 너는 기억해 줄 수 있니

by 장민혜

인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라고 가정하면, 나의 미련은 조금 줄어든다. 줄어든 미련만큼 기대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우리의 뇌는 선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을 잊고, 선명해지지 않아도 될 것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인간의 뇌는 애초에 그런 식으로 프로그래밍 돼 있기에 기억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래전 일이 되었다. 나에게는 벌써 11년 전 일이 되었다. 11년 전 4월 16일의 일. 나는 아직까지 그 순간에 갇혀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시 인터넷 이슈를 쓰는 매체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모 통신사의 기사를 그대로 받아써서 기사화시키는 일을 했다. 전원 구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쿵쾅거리던 심장이 가라앉았지만, 이내 오보였음이 밝혀지고 점차 가라앉는 배를 보며 그 안에서 마지막 희망이라도 부여잡으려고 애를 쓰며 울면서 기사를 하나씩 써 내려갔다. 그 모든 것은 오보였다. 당시 대표와 국장은 “사람이 죽으니 조회 수가 잘 나오네”라는 말을 내뱉는 인간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당직을 할 때에도 뉴스를 틀고 오열하며 기사를 썼다. 그리고 그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 시간 속에 나는 영원히 갇혀 버리게 된 것이다. 잠을 자려는 순간이면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악마 같은 글을 쓴 놈, 너는 그러고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냐, 이런 말들이 들려온다.


이제는 11년 전 일이 되어 그때의 충격을 기억하고 아파하는 사람은 뿌옇게 흩어졌다. 다들 그 시간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간 속에서 아파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 뒤로 시작된 나의 우울증은 멈출 줄 몰랐다. 나를 수도 없이 괴롭혔으며, 사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했다. 늘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이 어찌나 모순된 말인지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뿌옇게 흩어진다 하더라도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의 아픔을 조회 수를 위해 받아쓰기 하던 내가, 데스크에서 시키는 대로 악행을 저지르던 내가, 과연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용서를 받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 세월호 유가족들이 경찰이 쏘는 물대포를 맞아가며 최전선에서 시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갔다.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 길을 지나가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며 광화문 광장에서 나눠 주시던 노란 리본을 늘 가방에 메고 다녔다. 몇 번이고 중복 서명을 하기도 했고, 추모의 공간이 광화문에 있을 땐 늘 그곳에 들러 예를 갖췄다. 망자가 된 이들에게 나의 기사가 잘못된 행위였음을 반성하기 위한 일이었다. 당시 트라우마를 가지고 기자라는 직업을 그만둔 이가 많다고 들었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그 시절을 겨우 견뎌냈으나, 클릭 수와 광고 수입에만 매달리는 매체들의 행위가 보기 역겨워 그만뒀다.


그렇게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0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이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을 느낀다. 10년이 다 돼 가도록 받고 있는 우울증 치료도, 공황장애 치료도, 불안장애 치료도. 그 무엇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의 기억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손목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저주스러웠다. 나 자신이. 일을 하면서 즐거운 일도 많았다지만, 그때의 나는 TV 앞 멍한 시선으로 받아쓰기를 하던 무명의 기자일 뿐이었다. 진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것을 마구 써 내려가던 ‘기레기’. 그 시절이 있었기에 사실이 아닌 것을 쓸 때에는 구분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지만, 이미 내가 써 내려간 기사로 상처를 받았을 누군가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걸 안다. 데스크는 조회 수가 잘 뽑히는 기사를 쓰라고 했다. 데스크의 말은 법이었으며, 지켜야만 하는 것이었다. 일한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은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내가 지은 제목은 더 자극적으로 변했고, 내용 역시 내가 원치 않던 내용으로 변하기도 했다. 진실의 횃불을 밝히기 위해 기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기레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억한다. 그날의 일을.

그들이 뿌옇게 흩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나임을 알기에. 그들을 기억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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