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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타오른 내 심장은 네가 아니면 안 돼

by 장민혜

인간은 영원하지 않은 존재다. 하물며, 인간이 존재하는 세상 역시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138억 년 전 우주가 생겨났다. 이후 수많은 폭발과 충돌 속에서 행성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행성 속에서 인간의 시발점이 되는 세포가 탄생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고, 문자를 이용하고, 무역을 하고, 온갖 것을 주고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을 24시간으로 요약하자면 모두 밤 23시가 넘은 시점이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대다수가 밤에 이루어졌다. 24시간으로 요약할 때의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류는 더딘 속도로 진화했으며, 더딘 속도로 진화함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죽었다. 최근 몇십 년이야 놀랍도록 발전한 과학 기술로 인해 ‘100세 시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만큼 노년기의 우울증에 대한 심각성도 대두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만약 인간이 영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주는 영원하지 않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별도 영원하지 않다. 별의 후손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인간 역시 영원하지 않다. 그럼에도 인간이 무언가를 맹세할 때 영원을 걸며 맹세하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일정 기간 호르몬의 작용으로 ‘사랑에 빠졌다’라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러다 해당 호르몬의 분비가 낮아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호르몬의 농간에 넘어갔다고 생각하며 사랑과 헤어질 준비를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다. 죽기 위해 태어나는 존재다. 사랑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죽을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언젠간 끝날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별을 위해 한순간 불태워 사랑에 빠진다. 인간의 호르몬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짜여 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 아프다. 끝을 알면서도 시작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면, 그런 인간의 삶은 누가 만들었는가. 이러한 문제를 끊임없이 파고들다 보면 결국 생의 비밀의 알아낸 사람처럼 허무함에 휩싸이기 쉽다.


생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내가 상실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잃은 것들, 잊은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기억해 내려 해도 사라진 기억의 덩어리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태어나서 죽을 걸 알면서도 생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나, 사랑이란 감정이 유효한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나, 언젠가는 잊히고 지워질 감정을 알면서도 매 순간에 충실한 것은, 인간이 낭만적인 동물이 아니라, 비극을 맞이할 준비를 늘 해야 한다는 슬픈 결과만을 듣게 할 뿐이다. 인간의 인생 전반을 놓고 보자면 비극일까, 아니면 희극일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늘 상실을 겪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 그럼에도 그 자리에 머무르기만 할 수 없는 존재. 그런 존재로 살아가며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제목에 쓴 노랫말은 가수 김성규의 ‘너여야만 해’의 한 구절이다. ‘타오른 내 심장은 네가 아니면 안 돼’라는 구절이 마음에 들어서 이번 글의 주제로 정했다. 하지만 인간은 늘 반복하곤 한다. ‘타오른 내 심장은 네가 아니면 안 돼’라고 말을 하면서도, 결국에는 ‘너여야만 한다’라고 말을 하면서도, ‘너’라는 존재와 이별을 감수하고 모든 것을 시작한다는 것. 때때로 나는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 아까웠다. 사랑에 빠진 후 하는 감정 낭비도 싫었다. 사랑에 빠지면 없는 돈도 헤프게 쓰는 내가 싫었다. 나는 그것을 가리켜 감정의 3대 낭비라고 불렀다. 돈 낭비, 시간 낭비, 감정 낭비. 그랬기에 10년이라는 시간을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보낼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쌍방향 소통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옳다. 쌍방향 소통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고, 일방적인 짝사랑, 이를테면 덕질 같은 것들은 흐르고 흘러 나를 배신하지 않으니까.


감정을 버릴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었기에, 나는 덕질을 택했다. 그런 나를 보며 나의 아버지는 이야기했다. “넌 방어기제가 강한 편이로구나. 그런데 말이야, 세상에는 일방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때때로 일방적이 아니기도 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덕질 역시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나를 기억하기 시작한 뒤로는 더 괴로워졌다. 그 사람은 나와 닿을 수 없는 존재인 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려고 애를 썼다. 우스갯소리로 너와 나의 거리는 70-200mm라는 말이 있다. 그와 나의 거리는 망원 렌즈의 기본값과도 같아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이 생겼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그의 아내나 여자 친구 같은 것이 아니라, ‘성공한 덕후’였다. 그 시절 나는 그 감정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짧았던 덕질의 유효기간은 1년이었고, 1년도 못 가 존재감이 사라진 이들도 있었다. 가장 긴 덕질은 10년이었다. 그의 글에 울고 웃기도 하면서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물론 그 사이 ‘나의 오빠’들은 바뀌었다. 정말 유명한 그룹부터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이들까지. 취향은 일관적이지 않았고, 그저 나는 매 순간 충실히 사랑을 할 뿐이었다. 시간 낭비, 돈 낭비, 감정 낭비라고 중얼거렸던 말은 잊은 채로. 그들을 위해서라면 온갖 노동을 아끼지 않았고, 내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매 순간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쌍방향이 무섭다면서 도망쳤던 나는 일방통행을 가장한 쌍방향 소통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어리석었다. 어찌 인간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멋대로 정의하고자 하는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이제 ‘영원’이라는 말을 믿고 싶어졌다. 지금의 내 감정은 어디까지 타오를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무덤 속까지 가지고 갈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의 묘지 속에 함께 묻히며 ‘영원’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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