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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외로움도 저 바다에 날려버리겠어

by 장민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자주’라고 말하기 보단 ‘매일’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나는 서툰 사람이었고, 서툰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친구와의 연을 붙잡기 위해, 지나간 연인을 붙잡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사실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일은 없었다. 능소화가 활짝 핀 아래를 지나가다 친구가 찍어 준 사진은 여전히 내가 가장 아끼는 나의 사진이고, 제주도 유채꽃밭에서 촬영한 사진은 너무나도 소중해서 아주 가끔 친구가 그리울 때 꺼내보곤 한다. 친구를 다시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툰 내 방식 때문에 힘들었지 않았냐고 묻고 싶다. 인간은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다가 상실을 하고 난 뒤에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나 역시 그런 인간이었을 뿐이다. 나도 나의 마음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인연을 떠나보내야 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일을 여러 번 겪고, 정말 소중하다 싶었던 사람들을 잃고 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상실은 대개 성장으로 이어지곤 한다. 물론, 어느 한 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도 있지만, 대다수의 상실은 성장과 함께한다.


혼자서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겨울 바다였는데, 어쩌다 보니 밤바다까지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삶에 수많은 굴곡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벌써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날의 이야기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곁에 있는 인연들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영원을 믿었던 나이였다. 친구를 잃고 난 후의 슬픔, 연인을 잃고 난 후의 슬픔,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밀려올 줄은 몰랐다. 파도가 치듯 밀려온 슬픔 때문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언어 능력을 상실했고, 그 친구와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을 들을 때면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누군가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가장 싫어하는 인간임에도.


하현상의 ‘등대’는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외로움도 저 바다에 날려버리겠어’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10여 년 전 느꼈던 감정이 떠올라 울컥하고야 만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등대가 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게 해 주는 그런 존재들.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나의 첫 번째 독자가 그러한 경우였다. 그녀와의 마무리는 아쉽게 끝이 났지만, 내가 아직까지 글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으며 보여준 내 소설에 그녀가 눈물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운다는 것이, 나에게는 희망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슬픔을 건드렸기에, 그녀는 울었을 뿐인데 내게는 ‘넌 글을 써도 돼’라는 희망처럼 여겨졌다. 그 후로 수많은 글을 썼고, 그녀와 나의 만남은 언제나 카페에서 수다 떨기, 아니면 카페에서 글쓰거나 그림 그리기 등으로 이어졌다. 나보다 먼저 세상 밖으로 튀어나간 것은 그녀였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질 때마다 그녀가 찍어준 나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 시절의 우리는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과 다르게 나는 비쩍 마른 몸이었고, 조금 더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우리가 연을 끊은 지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어쩌면 그녀도 가끔 내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곤 한다. 나의 근황을 찾아보진 않을까 하고. 나의 근황을 찾아본다면, 말하고 싶다. 여전히 나는 방황하는 인간이고,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너와 약속했던 대로 글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어떤 소설이든 완결까지 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나의 이기심에 네가 상처를 받았을 것만 같아 미안하다고. 우리의 사이가 틀어지던 그때에도 너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지. 뭐라고 보냈는지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 나는 우리 사이가 금세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확인했던 것은 너는 내가 너에게 주던 책 선물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의 마음을 부담으로 느꼈다는 것뿐. 그 뒤로 나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깊게 열지 못해. 내가 베푼 호의가 어쩌면 부담으로 다가가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워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늘 수동적인 자세로 인간을 대하곤 해. 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네 비공개 SNS에 적혀 있던 내가 준 선물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 그런 것들이 너에겐 하나둘씩 쌓여서 나를 떠나게 한 것일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말이야. 너는 영원히 나의 첫 번째 독자일 것이라는 거야. 고독과 외로움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아니? 고독이 1인칭 시점이라면, 외로움은 3인칭 시점이야. 너로 인해 시작된 나의 외로움은 그 누구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니. 우리가 나눴던 수많은 대화 속에서 너라는 존재는 어떠한 낱말 한두 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는 걸 너는 알고 있니. ‘과거에 소리쳐봐도 들리지 않으니…… 억지라도 웃어보이는 건 내일이 있어서야’라는 가사에 나는 울컥하곤 해. 나에게 내일은 네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데. 왜 떠나간 연인들을 그리워하진 않아도, 너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일까. 꿈속에 찾아와 우리가 우리였던 시절의 날들을 되새김질 하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될 수 없음에도.


친구야, 너에게 나는 이제 친구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나의 종말이 올 때까지 너는 친구일 거야. 외로움 속에서 나는 너를 기억하겠지. 나에게 등대 같았던 너.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알려주던 유일한 사람. 그런 너를 쉽게 잊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너라는 등대는 내게 있어 가장 빛나는 존재로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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