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적응 실패, 음산한 도시를 가르다
2021.12의 회고
코로나 시대, 얼어붙은 뉴욕
2021년 학회 참가로 찾은 뉴욕은 당시 한국과 달리 외부에서는 마스크 미착용이 허용되었고, 실내에서는 착용이 필수였다. 그런 뉴욕의 겨울은 원래도 차가운 공기가 도시를 감싸지만, 2021년의 뉴욕은 더욱 서늘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거리, 어디를 가든지 요구되는 코로나 음성 확인서, 그리고 문을 닫은 가게들. 한때 붐비던 도시가 낯설 정도로 조용했다.
시차 적응 실패
그 속에서 나는 시차 적응에 실패한 채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눈을 떴다.
깊은 밤과도 같은 정적이 흐르는 도시에서 가만히 누워 있기만에는 너무 답답했다.
어쨌든 난 뉴욕의 새벽을 마주하기로 했다. 운동화 끈을 조이며,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도로 위를 달려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달리기를 결심하기 전, 내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 어두운 새벽 거리에서의 불안감,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
하지만 가만히 누워 있기만에는 너무 답답했다.
(호텔 gym도 문을 닫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street 뿐)
얼어붙은 도시를 가로지르다
뉴욕의 새벽은 생각보다 더 음산했다. 빌딩들 사이로 부는 칼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고,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인적이 드문 거리는 어딘가 낯설었다.
뉴욕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라고만 생각했는데,
텅 빈 도로 위를 뛰는 순간,
마치 내가 유령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려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들리는 건 오직 내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뿐. 발이 닿는 차가운 보도블록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하지만 도로 한가운데를 뛰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묘한 해방감도 교차하였다.
호텔을 나서 타임스퀘어를 향해 달렸다.
거리는 조용했지만, 네온사인 불빛이 도시의 어둠을 뚫고 빛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새벽 출근을 하기 시작하였지만, 평소의 북적이는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타임스퀘어를 지나 조금 더 달려 메이시 백화점 앞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메이시 백화점 주변 또한 저녁 분위기와 너무 비교되었다.
마지막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주변을 돌며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거대한 빌딩을 올려다보며, 밤과 새벽이 교차하는 시간, 나만의 뉴욕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두려움은 나의 무지에서 온다
본격적으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희뿌연 어둠이 점차 사라지고, 뉴욕의 아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한바탕 땀을 흘린 후에 오는 만족감인지, 아니면 어두운 거리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사라진 것인지, 뉴욕의 아침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고 편안해지면서 비로소 이 거리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처음 이 길을 뛰기 시작할 때는 두려웠다. 길이 낯설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바퀴 돌고 나니 길이 익숙해졌고, 해가 떠오르면서 두려움도 함께 사라졌다.
결국, 두려움은 알지 못할 때만 존재한다.
익숙함은 빛과 같아서, 그곳을 비추는 순간 어둠이 사라지듯 두려움도 함께 사라진다.
낯설고 미지의 공간 속에서는 불안함이 앞섰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이 도시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온몸이 얼어붙었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다.
이때 뉴욕의 새벽 거리 달리기는 나에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코로나라는 답답한 현실 속에서, 시차로 인해 엉켜버린 시간 속에서 내가 찾은 작은 탈출구였다.
뉴욕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새벽, 얼어붙은 도시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