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인생의 시작
2023년, 보스턴에서의 회고
그때는 마라톤을 직접 뛰겠다는 생각도, 러닝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경험이 내 라이프의 변곡점이 되어주었다.
난 어려서부터 스피드가 없어 반 대표로 계주를 해 본 적도 없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빠름을 인정(?) 받아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올림픽 결승전에서 보는 달리기 시합은 지구인과 우주인 사이 그 어디쯤 재주를 가진,
타고난 사람들의 경쟁?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보스턴에서의 하루가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보스턴 마라톤, 거리에서 느낀 전율
보스턴을 찾은 건 마라톤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학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도시였고,
보스턴 마라톤 풍경이 우연히 학회장을 향한 나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우연이 내게 필연적인 계기가 되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러너들.
비슷한 속도로 함께 뛰는 사람도, 제 페이스대로 묵묵히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얼굴도, 환희에 찬 얼굴도 보였다.
잠시 멈추고 달리는 모든 사람들과 풍경을 주시했다.
기록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도전을 위해 나선 사람도,
그냥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달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도로 한편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심장은 함께 뛰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러닝이 단순한 신체적 활동 이상의,
심심하고 따분한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아주 멋지고 강해 보였다.
학회에서 주관 5KM 러닝 – 작은 도전, 큰 변화
러닝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내가,
다음날 학회에서 열린 5KM 러닝 이벤트에 참가하기로 결심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다음날,
급하게 러닝화를 사고, 어마어마한 긴장감 속에 출발선에 올랐다.
출발 구호가 울리자 수백 명의 러너들이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환호하지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긴장한 채, 두려움에 떨며 달리기 시작했다.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숨이 차서 쓰러지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을 계속 끝도 없이 맴돌았다.
그런데 한참을 뛰다 보니,
점점 머릿속이 비워지기 시작했다.
근심도, 계산도, 두려움도 사라지고,
오직 지금 이 순간, 나의 숨소리만이 들렸다.
그때 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어떤 목표도 의무도 없이 달리는 이 순간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첫 대회 완주를 하며
처음으로 대회에 참가해 5KM를 완주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땀에 젖었지만,
나는 바보처럼 웃으며 결승선을 거닐고 있었다.
서로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그날, 보스턴 거리에서 마라톤을 바라보던 내가
불과 몇 시간 후, 러닝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러닝을 계속해보기로 결심했다.
어떤 대회에서 뛰겠다는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라,
그냥 더 뛰어 보고 싶었다.
회고를 마치며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달린다.
누군가는 기록을 목표로,
누군가는 끝까지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가 아니라,
달리는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