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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노트13화] 부모의 그림자를 넘어선 피노키오

사랑의 불완전함

by 민이


쿵쿵쿵. 딱딱딱. 쓱쓱쓱.

나무를 자르는 소리가 들린다.


언덕 너머 울창한 숲속에 빨간 지붕을 가진 통나무집 한 채가 있었다.

가난한 목수 제페토는 그 안에서 홀로 살았다.

오랜 세월 외로이 살아온 그는 간절한 소원을 품고 있었다.

‘내게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나무를 깎아 인형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그 인형이 살아 움직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피노키오’였다.


이 장면은 그리스 신화 속 조각가 피그말리온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여인상 ‘갈라테이아’를 사랑했고, 신이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기대와 믿음이 현실을 만든다’, 즉 예언이 스스로 실현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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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된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지극히 사랑했다.

사랑이 깊을수록 그는 ‘착해야 사랑받는다’는 자신의 도덕 기준을 강조했다.

선의의 통제자였던 제페토는 아들을 바른 길로 이끌고 싶었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순수하고 충동적인 아이였다.

학교에 가야 하지만 인형극단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탕과 장난감에 쉽게 현혹됐다.

그리고 실수를 감추려 거짓말을 할 때마다 그의 코는 길어졌다.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닫는다.

‘착한 아이가 된다는 건 복종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서는 일’임을.


이때 피노키오에게 자아 분화가 일어난다.

자아 분화란 반항이 아니라, 부모의 기대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사고의 경계선을 세우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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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피노키오는 진심 어린 용기와 사랑으로

고래의 뱃속(즉, 무의식의 심연)에서 제페토를 구한다.

그 순간 그는 진짜 인간 소년으로 변한다.


“가족이란 우리의 첫 번째 학교이자, 평생 풀어야 할 철학적 문제다.”

푸코는 권력과 자유의 최초 경험이 가정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부모가 되면 우리는 고민한다.

‘내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까?’

그 답은 사실, 우리가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는지에 숨어 있다.


부모의 말투, 감정 표현, 싸우는 방식,

화해의 패턴, 돈을 대하는 태도, 절약 습관,

아버지의 과묵함, 어머니의 성실함—

이 모든 것이 자녀의 무의식 속에 차곡히 새겨진다.


부모의 삶의 패턴은 아이의 성격의 토양이 되고,

결혼 후엔 종종 그 그림자가 되살아난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아빠처럼 되고 싶다.’


그러나 무의식의 습관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비교하며

‘나는 어디까지 닮았을까’를 점검한다면,

그건 그림자를 넘어서는 가장 지적인 방법이 된다.


융은 말했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그것은 운명으로 나타난다.”

결국 우리가 ‘팔자’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무의식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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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페토의 사랑은 선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피노키오의 거짓말 역시 악의가 아니라 미숙한 자기표현이었다.

사랑을 채워 넣는 송편처럼, 속을 너무 많이 넣으면 터져버린다.

자녀에게 필요한 건 건강한 자유와 적당한 통제의 균형이다.


우리는 부모 아래서 자라나고,

우리의 자녀는 그 영양분을 먹으며 자라난다.

결국 피노키오의 이야기는

“성장은 사랑의 불완전함을 통해 완성된다”

라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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