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 SHELROCK (2010~2017)
“221 베이커가로 가주십시오.”
<셜록/SHELROCK (2010)>
‘기억하는 기억에 관하여’
드라마 ‘셜록’은, 작가 ‘코난 도일’의 대표작인
‘셜록 홈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국의 드라마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만큼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천재적 추리력을 지닌 탐정 셜록 홈스와
전쟁 후유증을 지닌 군의관 존 왓슨이
각종 난해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고전 작품인 셜록 홈즈를
스마트폰, 인터넷, CCTV 등
현대 기술과 결합해 재해석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팬으로서
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봐왔고,
작가로서
글로 쓰기도 해 볼 만큼 영화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물어본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문장은 한 드라마의 이 대사다.
“네 맥박을 쟀거든. “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의 대사로,
사실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면 알기 힘들다.
작중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인물인
셜록이 내뱉은 가장 이성적이고도
가장 로맨틱한 한마디…
더 이상 스포를 하여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2010년대 최고의 드라마로 꼽히는
작품을 잃게 하고 싶진 않으니
스포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본론으로 들어가
셜록의 특별한 점은
고전 작품을 현대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재해석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1800년대 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생긴
화려한 연출과 촬영 기법에
자칫하면 가려질 수도 있는 셜록에게
더욱 강한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위해,
원작엔 없던 소시오패스라는 개성을 더했다.
특히 자칭 ‘고기능 소시오패스’라 칭하는 만큼
이는 드라마의 줄거리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뛰어난 지능을 바탕으로 한 탈인간 급의
기억력, 추리력을 보여주는 셜록이지만.
사실 ‘기억’이란,
앞서갈 때엔 이성적이기도
돌아볼 때엔 감성적이기도 해진다.
그래서 셜록의 기억은
언제나 객관적인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은
꽤나 지극히 주관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셜록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마인드 팰리스라는 공간 안에서
강박적으로 정보를 분류하고, 정리하고,
필요 없는 것은 의도적으로 밀어낸다.
그 선택의 기준은
진실이 아니라 효율이다.
범죄를 해결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기억,
논리를 흐리게 만드는 감정,
사건과 무관한 인간적인 여백들은
그에게서 삭제된다.
그래서 셜록의 기억은
항상 정확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듯
항상 완전하지는 않았다.
기억은 객관적일 수 있을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는 행위는
마치 객관처럼 보이지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순간
그 기억은 이미 주관이 된다.
셜록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아이린 애들러가 옷을 입지 않음으로써
셜록의 '데이터 수집'을 방해했을 때에도,
사람의 얼굴보다
사람의 맥박을 먼저 보았고
표정보다 수치를,
감정보다 반응을 믿었다.
“당신 맥박을 쟀거든.”
감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감정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증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것이 셜록이었다.
그렇게 이성만을 좇는 인물 곁에는
항상 존 왓슨이 있다.
셜록과 달리
조수인 왓슨은
기억을 정리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셜록의 조수로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요소들을 갖고 있다.
감정적이고, 매번 여자 문제에 휩싸이는 등…
특히 전쟁의 기억은 정돈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그는 셜록을 만나기 전까지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미정리된 기억들 덕분에
작중 그는 의사와 군인으로서의 역할도
출중히 해내는 동시에
평범한 사람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남는다.
셜록이 버린 것들을
왓슨은 조심스레 주워왔고,
셜록이 외면한 감정들을
왓슨은 대신 마주한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이유는
천재의 추리나 범죄자들의 범죄방식이 아니라,
기억을 대하는 두 태도의 대비에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사람과
기억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셜록’은
완벽한 기억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이기보다는,
기억이 결코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래서 본인조차도 소시오패스라 소개하기도 하고,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셜록에게 감독은
기쁘거나 슬플 때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도 하며,
자작곡을 쓸 만큼의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준 듯하다.
어떤 것보다도 감정적인 음악을 함으로써
말로는 표현치 못하지만,
셜록 그의 안에서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누구보다도 뒤를 많이 돌아보는 이를 보며
많은 생각들을 해볼 수 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
셜록의 오랜 숙적인 모리아티와 대비되는 점이
이러한 부분에서 나오는 듯하다.
두 인물은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이며 동시에
소시오패스라는 점에서 많이 비슷한 캐릭터이지만
내면에 사랑을 가질 수 있냐의 차이가
세계 최고의 탐정과
사상 최악의 범죄자로 나눠진 것 같다.
그리고 서로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모리아티와
그런 모리아티와 자신은 다르다는 셜록.
어쩌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모리아티는
무감정과 감정을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정을 가진 자만이
감정과 무감정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모리아티와 자신은 다르다던 셜록은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감정과 무감정을 구분하는 점에서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끝내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누군가를 기억하려 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드라마는 단순한 추리극을 넘어선다.
셜록에게 기억이란
원래 효율적인 파일을 보관하는 '캐비닛'이었으나,
존 왓슨과 아이린 애들러,
그리고 수많은 사건을 거치며 그 공간은 점차 온기가 도는 '집'으로 변해간다.
그는 효율을 위해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며
스스로를 기계화하려 했지만,
결국 그를 구원한 것은 그가 삭제하려 했던
'사소하고 인간적인 여백들'이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마인드 팰리스 안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던 이름들,
그리고 그 이름들에 반응해 요동치던 맥박은
셜록이 결코 차가운 기계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결국 셜록 홈즈라는 인물의 위대함은
그가 범접할 수 없는 천재라서가 아니라,
그 천재성 뒤에 숨겨진 서툰 진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리아티가 보지 못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논리는 세상을 설명할 수 있지만,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논리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향한 기억'과
'그로 인해 뛰는 심장'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단순히 정보로서의 과거인가,
아니면 나를 나답게 만드는 뜨거운 순간들인가.
셜록이 아이린의 맥박을 숫자로 기억하며
끝내 그들을 지켜냈듯이,
우리 역시 소중한 이들이 남기고 간
그들의 맥박 소리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바이올린 선율이 베이커가에 울려 퍼질 때,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소시오패스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누구보다 뜨겁게 세상을 사랑했던,
그래서 그 사랑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맥박이라는 숫자로 숨겨야만 했던
한 남자의 뒷모습을 기억하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