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 다이어트

비우고 단순하게 살기

by 읽어봐요

혹시 옷장 문을 열 때마다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거나, 책상 위에 정리가 필요한 서류와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풍경에 마음이 답답해진 적 없으신가요?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거리들이 엉켜있어 정작 중요한 일에는 집중하기 어려웠던 경험은요? 어쩌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불필요한 군살처럼, 삶의 무게를 더하는 군더더기들 말이에요.


언제부터인가 제 마음 한구석에 낮은 주파수의 소음 같은 것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뚜렷한 실체는 없지만, 일상의 배경음처럼 잔잔하게 깔려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고, 까닭 모를 조급증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미세한 파동들이요. 마치 잘 조율되지 않은 악기처럼, 삶의 어딘가가 삐걱거리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신호 같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경험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곤 합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옷장 속에 차곡차곡 쌓인 옷가지들, 빼곡하게 채워진 일정표, 그리고 관계의 넓이.

이런 것들이 때로는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어느덧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무게감에 짓눌려 숨 막힘을 느낄 때도 있지 않으신가요? 오래된 감정의 더께처럼 물건 위에 내려앉은 시간의 그늘, 그것들을 관리하고 유지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속박감, 쉴 새 없이 흘러드는 정보의 파편들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오는 정신적인 포화 상태.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아서 정작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위한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날, 제 삶에 ‘여백’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림에서 여백이 그림의 주제를 더욱 돋보이게 하듯, 삶에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냄으로써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어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리정돈을 넘어, 제 삶의 에너지와 시간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의식적인 재조정 과정이었습니다.

마치 이야기의 군더더기를 덜어내어 핵심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편집자의 마음으로, 제 삶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죠.


덜어냄의 기술 : 공간, 생각, 그리고 시간의 재구성


첫 번째 시도는 제 주변의 물리적인 공간에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몇 해 동안 한 번도 손대지 않았던 물건들,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붙들고 있던 잡동사니들을 하나씩 비워냈습니다.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기억과 마주하고 그것을 떠나보내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지만, 빈자리가 늘어갈수록 마음 한편이 놀랍도록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꽉 막혔던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신선한 공기가 방 안 가득 순환하는 것처럼, 정체되었던 생각과 감정에도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는 듯했습니다.


다음은 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생각의 가지치기였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반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섣부른 예단들. 이런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벗어나기 위해, 저는 마음의 일렁이는 수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억누르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아, 이런 생각이 지나가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죠. 때로는 팽팽하게 잡고 있던 기대라는 연줄을 느슨하게 놓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렇게나 저를 괴롭히던 생각의 파도가 조금씩 잦아들고, 그 자리에 고요한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의 사용법 또한 중요한 정리 대상이었습니다. 의미를 찾기 어려운 분주함 속에 흩어져 버리는 소중한 시간의 조각들을 보며, 저는 ‘무엇을 더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초대에 응하고 모든 기회를 잡으려 애쓰기보다 저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활동과 만남을 선별하고, 나머지는 기꺼이 흘려보내는 연습을 했습니다. 마치 나만의 정원을 가꾸듯, 소중한 씨앗에만 물과 햇볕을 집중적으로 공급하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확보된 ‘고요의 주머니’들은 제게 깊은 회복과 재충전의 시간을 선물했습니다.


단순함이 건네는 삶의 지혜 : 본질에 집중하는 기쁨


덜어내고 비워낼수록 제 삶은 역설적으로 더욱 채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불필요한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제 내면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저를 설레게 하는 것, 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이죠. 이것은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나는 듯한, 깊은 내면의 정렬이었습니다.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복잡함이 줄어들자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햇살의 따스함, 커피 한 잔의 깊은 향, 창밖 나뭇잎의 미세한 떨림, 사랑하는 이의 미소. 이런 꾸밈없는 것들의 소중함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더 이상 많은 것을 갈망하며 외부를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는 대신, 이미 내 안에,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넉넉한 만족감’을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삶이 경주보다는 사색적인 산책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영혼으로,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나 변화 앞에서도 이전보다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긴 것도 큰 변화였습니다.


여백을 가꾸는 삶 : 부드러운 현재진행형


삶의 여백을 만들고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은 한 번의 대청소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다시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부드러운 경계이자, 덜어내고 살피고 다시 조율하는 지속적인 관심의 과정입니다. 완벽한 비움을 목표로 하기보다, 그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오늘의 나에게 맞는 균형점을 찾아가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혹시 지금, 삶의 무게감이나 복잡함 속에서 방향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 당신만의 ‘여백 만들기’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사용하지 않는 앱 하나를 정리하는 일,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내일의 걱정 대신 오늘의 감사한 일 한 가지를 떠올려보는 습관. 그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당신의 삶에 예상치 못한 평온과 자유를 가져다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삶의 가장 깊은 울림은 요란한 축제의 환호성이 아니라, 모든 불필요한 소리가 잦아든 고요의 순간에 비로소 우리 마음에 가만히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고요 속에서 당신만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한층 가볍고 충만한 일상을 가꾸어 가시길 응원합니다.

keyword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09화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