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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빗속의 그날



비 오는 그날, 찬호는 처음으로 지연의 아버지를 보았다.
방학동 근처에서 바이어와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생각보다 빗줄기가 거세졌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출발했지만,
언덕길에 접어들 즈음 폭우는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와이퍼를 아무리 움직여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차를 잠시 세우려던 그때,
뒤따라오던 트럭이 미끄러지며 내 차를 들이받았다.

“쾅!”
순식간에 차는 비탈길 아래로 밀려났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운전대를 꽉 잡고 전방을 응시했지만,
눈앞은 회색 비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충격.
“쿵!”
유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이마에 뜨거운 통증이 퍼졌다.
안전벨트 덕에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충격은 컸다.

차 안으로 빗물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찬호는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이 골목길을 삼키며
낮은 집들을 차례로 덮어버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봐요! 괜찮아요?”

비를 맞은 채 달려온 중년의 남자였다.
“잠깐만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는 문을 열려 했지만,
차가 전봇대에 박히면서 운전대가 찬호의 가슴을 눌러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좌석을 뒤로 젖혀 공간을 만들고,
온힘을 다해 찬호를 끌어냈다.
그리고 빗속에서 그를 등에 업고
지대가 높은 곳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얼마 후, 병원 응급실 불빛이 보였다.
찬호를 내려놓은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빗속으로 뛰어가 버렸다.
그게 그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찬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는
“중랑천 범람으로 방학동·창동 일대 수재민 8,000명 발생”
이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며칠 후, 찬호는 생명의 은인을 찾기 시작했다.
병원 CCTV를 뒤지고, 경찰이 된 대학동기에게 부탁을 했다
며칠 뒤 돌아온 소식은 어두운 얼굴로 찬호야

“그분… 방학동 주민이야.
그날 아내와 딸을 구하려다 물에 휩쓸렸대.
아내분도 돌아가셨고… 딸만 살아남았어.”

찬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의 폭우처럼,
말로 다할 수 없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슴속을 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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