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장 2. 바그라티온 작전 2단계

수보로프 공세

by 전략 문학

(이 글은 '대체역사' 항목에 포함됩니다.)

(가져가시는 건 자유지만, 출처를 명기해 주세요)


[엔드지크] 시리즈

제1부 철혈의 지배

1944년의 장

중간장 2. 바그라티온 작전 2단계 : 수보로프 공세


프롤로그 : 책임은 남는다


여름의 낮은 햇살과 초가을의 음울한 구름 속의 모스크바. 스타브카.


지하 깊은 스타브카 회의실은 계절과 단절된 공간이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파이프 연기가 지도 위에서 그림자처럼 흐르고 있었다.

붉은 군대 참모총장 알렉산드르 바실레프스키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1944년 8월 20일. 오늘 날짜로 바그라티온 작전의 1단계, 쿠투조프 공세를 종료합니다.

성과분석은 축선별로 보고 드리고, 질의응답과 토의를 갖겠습니다."


"좋소. 시작하시오. 다들 토의를 나누시오. 부담 갖지 말고."

마흐로카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스탈린이 답했다.


"핀란드 축선에서는 레닌그라드 전선군, 카렐리야 전선군이 투입되어

비보로크를 탈환하며 카렐리야 지협을 다시 확보하였습니다.

이후 탈리에서 핀란드군의 주력을 포위 소멸하고 핀란드의 종전 요청을 거부.

현재는 헬싱키를 향해 전진 중..."


"핀란드. 우리는 그들의 주력을 소멸시켰다. 왜 그들은 아직도 항복하지 않고 있는 거지?"

스탈린이 그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군사적인 관점에서, 핀란드는 재기불능입니다.

장비는커녕 기초적인 인원조차 동원할 여력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경비 사단들이 구식 소총 따위를 들고 맞서고 있지요.

그들의 굴복은 금방입니다. 한 차례 공세로 충분합니다."

국방인민위원 제1차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가 빠르게 답했다.

"내 말은, 그러니까 왜 항복하지 않느냐는 거잖소."

스탈린이 듣기 싫다는 듯 손사례 치며 답했다.


잠시 침묵.

주코프의 시선이 갈 곳을 잃었다.


다시 입을 연 것은 외무상 바체슬라프 몰로토프였다.

"그들은 외교적으로 상황을 타개하려고 시도 중입니다.

저희에게는 계속 정전 협상을 제시하고 있고 독일에는 군사적 지원 요청을,

그리고 서방에는 중재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서방? 중재?"


"예. 서기장 각하.

첩보에 따르면 그들은 서방측에 자신들은 나치 독일에 가담하지 않았고,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전쟁에 끌려갔다고 주장하며 연합국 가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갔군. 그래서, 우리의 서방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들은 노르망디에서의 총체적인 패배와 철수, 그리고 서로 간의 갈등으로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입니다.

제국 영국은 핀란드의 제안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미국은 연합국의 의사 통일을 주장하며

단독적인 행동을 하지 마라고 영국에게 경고했다고 합니다."


"영국 놈들은 우리를 견제할 수 있다면 누구와도 손잡을 놈들이다."


"정확합니다."


"그래서, 영국이 핀란드에 개입하거나 우리를 압박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들의 고립과 손실은 막대합니다.

그들에게는 지금 와서 단독행동으로 나설 여력도, 의지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핀란드는 우리에게는 정전을 외치며 뒤로는 영미와 접촉하고 있었다는 거군."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용서할 수 없다.

사소한 문제를 들먹이며 오늘 그들과 정전한다면 내일은 헬싱키에 영국 전함이 입항할 거다.

핀란드의 무조건 항복까지 붉은 군대는 멈추지 말고 전진하라."


스탈린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주코프가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몰로토프는 고개를 끄덕였고, 베리야만이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져가자 바실레프스키가 입을 열었다.

"... 계속해서 다음으로 가겠습니다.

이번에 검토할 부분은 발트 축선, 쿠투조프 공세의 주공 축선에 대한 보고입니다.

발트 축선에는 제1, 제2, 제3 발트 전선군이 투입되었습니다."


발트 축선.

분위기는 다시금 깊게 가라앉았다.

바실레프스키는 구체적인 수치나 세부적인 내용은 ‘생략’ 하기로 했다.


"제1 발트 전선군은 견제 임무 수행 중 비텝스크 – 리가 축선에서 공세가 정체되었습니다.

제2, 제3 전선군은 주공으로 투입되었으나 예기치 못한 반격으로 작전목표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누군가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누구도 눈을 들지 않았고, 바실레프스키의 지시봉은 지도 위에 멈춘 채 있었다.


"... 실패 원인은?"

스탈린은 파이프를 내리며 한마디만 했다.

그의 한마디는 얼음으로 만든 단검처럼 차가웠다.


"예상치 못한 기갑 전력의 집중이 있었습니다.

서방 동맹의 빠르고 총체적인 실패는 적에게 기동의 자유를 제공했습니다.

공세를 개시하는 시점에서는 그런 규모의 적 전력 보고가 전혀 없었습니다."

주코프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는 회의장의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는 구원을 요청하듯 바실레프스키를 쳐다봤다.


"... 원수의 말대로입니다.

발트 축선에서는 적의 기동예비가 투입되었습니다.

기존 정보망으로는 예상치 못한 위치와 규모입니다."


"기동 예비라. 어디서 온 놈들이오?"

스탈린은 무심하게 물었다.


"중부집단군 예하로 추정됩니다만, 편제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 그 결과, 제2 · 제3 발트 전선군은 공세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바실레프스키는 빠르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내무인민위원, 라브렌티 베리야가 말을 꺼냈다.


"예상치 못한 전력, 보고되지 않은 움직임...

동무들, 그건 정보를 완전히 놓쳤다는 뜻 아닙니까?"


베리야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의 분위기는 한층 더 차가워졌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고, 서로의 시선들이 불편하게 교차했다.

바실레프스키는 보고서를 덮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음 축선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민스크 축선, 쿠투조프 공세의 보조 축선에 대한 보고입니다.

제1, 제2 벨라루스 전선군이 공세에 투입되었으며, 오르샤와 모길료프를 해방하였습니다.

이 성과는 스몰렌스크의 안전 보장을 위한 종심을 확보한 성과이자,

차후 작전을 위한 출발 지역이기도 합니다."

바실레프스키는 문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낭독했다.


"보브루이스크 도하는 실패했습니다.

보리소프 방면은 일시적으로 도하에 성공했으나 연결선 유지에 실패,

복수의 사단이 고립 및 괴멸되었습니다."


그는 말을 끝맺고 잠시 멈췄다.


주코프가 이어받았다.

"비록 손실이 있었으나, 전략적 종심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적들은 반격은커녕 방어선 재편성조차도 버거워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종심과 시간을 확보했습니다."


"그럼 이게 성공이라는 건가?"

스탈린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 이후 스탈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보고는 이거로 끝인가? 참모총장?"


"예, 서기장 각하. 이번 작전에서의 실패와 성과는..."


"성과는 있다. 그러나 대가가 너무 크다."


바실레프스키가 정리하려 했지만 스탈린은 짧게 결론지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다음 공세에 대한 준비와 보고를 서둘러라.

지금의 희생은 최후의 승리를 위한 과정이겠지?"


"네, 서기장 각하. 물론입니다.

빠른 준비와 철저한 계획으로 반드시 승리를."


보고는 종료되었지만 책임은 남았다.

그것은 승인이나 인정을 답보로 한, 무언의 경고였다.



본편

러시아 제국의 대원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왜 또 과거의 장군 이름인가."


스탈린의 목소리는 피로에 젖어 있었다.

파이프 담배의 연기만이 천천히 회의실 천장으로 흘러 올랐다.


"예, 서기장 각하. 수보로프는 시간을 지키는 장군이 아니라, 시간을 추격하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공격 속에서 질서를 찾았고, 공세 속에서 생존을 확보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이름입니다."


"공격 속의 질서와 공세 속의 생존."


"그렇습니다."


스탈린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담배 끝의 불씨만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이번엔 왜 발칸이지.

어째서 우크라이나와 카프카스의 상실을 회복하려 들지 않지."


"발칸을 관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우크라이나와 카프카스를 해방하는 것에 비해 전략적으로 유리합니다."


"흐응."


스탈린은 낮게 되뇌었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 속에서, 바실레프스키는 펜 끝으로 지도를 더듬으며 말했다.


"루마니아와 헝가리는 핀란드와 같은 추축국의 약한 축입니다.

이들을 공격하여 단숨에 붕괴시킨다면..."


그는 스몰렌스크에서 남쪽으로 선을 그어서 부쿠레슈티, 부다페스트로 이어갔다.


"...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와 카프카스의 독일군은 고립됩니다."


그리고 부쿠레슈티의 인근, 플로에슈티에 원을 쳤다.


"또한 추축국에 원료를 공급하는 석유 생산 및 가공 지역인

플로에슈티를 확보하여 그들의 전쟁 기계를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카프카스를 상실한 것처럼 말인가?"

지도를 쳐다보던 스탈린이 담배 연기를 뱉으며 자문하듯 말했다.


"............."


바실레프스키는 물론, 방 안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지도 위 플로에슈티에 멈춘 그의 손이 떨렸다.

잠시 후, 총참모부 제1 부총참모장 알렉세이 안토노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기장 각하, 남하할 경우 라스푸티차 시기의 도로 사정이 작전 전개에 중대한 제약이 줄 수 있습니다.

특히 보급 열차의 전개 속도가 지연되면 병참선이 크게 늘어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작전이 가능하다는 건가, 불가능하다는 건가?"

스탈린이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 넣으며 물었다.


"작전 준비와 조율을 서두르고, 공세는 빠르고 과감하게 실시해야 합니다.

라스푸티차가 심해지기 전에 루마니아와 헝가리에서 결정적 성과를 확보해야 합니다."


바실레프스키가 빠르게 답했다.

스탈린의 대답은 없었다.


"저, 서기장 각하. 사실 발칸에서는 좋은 징후들이 꽤 있습니다."

국방인민위원회 제1차관 니콜라이 불가닌이 웃음과 함께 끼어들었다.


"헝가리는 얼마 전부터 저희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침몰해 가는 독일과는 더 이상 같이 못 지내겠다는 거지요.

그리고 루마니아에서는 프톨레타리아 혁명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붉은 군대가 다가가서 그들의 등짝을 한 번 후려쳐 주면 됩니다."


"정말인가?"

"그럼요. 우리가 그들의 국경 근처만 밟아도 들불처럼 일어날 겁니다."


"그들에게 중포가 있나 전차가 있나. 그런 건 별 소용이 없을 텐데."


"중요한 것은 대규모 소요 사태가 난다는 거지요.

병참 마비, 군대 전환...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좋소.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않겠소.

모든 일에 결판을 내는 것은 전투 사단의 몫이오."


그와 대화를 마친 스탈린은 문득 생각났는지 바실레프스키를 다시 쳐다봤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예, 서기장 각하,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독일에 비해 가지는 군사적 장점을 말해보시오."


바실레프스키는 잠시 말을 잃었다. 질문의 의도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고 답했다.


"단결된 사회와 대규모 동원 능력, 그리고 동맹국들의 지원입니다.

전 인민이 하나 되어..."


"그런 수사는 그만두고, 방금 대규모 동원 능력 이랬잖소.

그건 좋소, 양은 곧 질이니. 그건 아주 강력한 장점이오.

... 그런데 왜 자꾸 전략 공세 한 번에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내려는 거요?"


바실레프스키가 생각하는 동안 스탈린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물량과 동원력, 동맹의 지원 — 그 모두가 우리 편이오.

그렇다면 왜 계속 결전을 시도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소모전으로 무너뜨릴 수 있지 않소?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전력을 나누어 조금씩 갉아먹는 방법이 더 합리적이지 않냐는 말이오."


바실레프스키가 숨을 삼키며 답했다.

"서기장 각하, 정치적·외교적 시간표가 문제입니다.

서방의 공백, 연합국 여론, 국내의 사기—

지금은 속도로 밀어붙여야 정치적 여파가 긍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치적 여파? 그런 이유로 병사를 소진시키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병력과 민심을 아껴야 한다.

물자나 인력이 무한하다는 엉터리 선전 같은 걸 말하지 마시오."

스탈린이 파이프 끝으로 책상을 쳤다.


주코프가 단호하게 끼어들었다.

"그러나 속전속결이 불가피한 지점도 있습니다.

특정 목표를 신속히 차단하지 않으면 적의 회복을 허용합니다."


"그렇다면 전략적 목표를 엄밀히 고르시오.

무모한 총력 투입이 아니라, 적의 핵심 동력을 차단하여 그들을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신중히 한 가지를 택하되, 인민의 피를 가치 없는 낭비로 계속 소모하지 말라."

스탈린이 무겁게 말했다.

회의실의 공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분석 : 피 흘리는 붉은 거인


1. 작전 구상과 초기 배치


작전 구상

바그라티온 작전의 1단계인 쿠투조프 공세는 수보로프 공세를 위한 기만 작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수보로프 공세는 바그라티온 작전의 2단계이자 결정적 기동으로 설계되었다.

공세의 핵심은 독일의 중부 집단군과 남부 집단군의 간극을 파고들어

러시아 중부를 사선으로 깊게 횡단한 뒤 발칸으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헝가리·루마니아를 항복시켜 전쟁에서 이탈시키고,

우크라이나와 카프카스를 점령 중인 독일군의 보급선을 절단하여 이들을 고립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초기 배치

이를 위해 소련은 광범위한 재편·동원을 단행했다.

심대한 피해로 재건이 지연된 전선군들은 해체·통합되었고,

각지에 흩어진 기계화 부대들은 재편성·재훈련되었으며 스타브카 직속 예비가 동원되어 병력이 완성되었다.


2. 교전 양상

이번 중간장은 전략 회의 중심의 서술로, 대규모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실제 전투와 주요 충돌은 후속 장들에서 전개된다.


3. 수보로프 공세 전투 서열(Order Of Battle) 요약

※ 길어지는 산업·자원 지역의 상실과 1943년 이후 누적된 기갑 전력의 대량 손실은

소련군의 조직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키고 있었다.

특히 근위 전차군은 대부분 해체되었고, 완전 편성된 전투 서열과 기동 능력을 유지한 부대는

스타브카 직속 기동 예비인 제2 근위 전차군 단 한 곳뿐이었다.


4. 작전적 효과


수보로프 공세의 작전적 효과는 작전이 실제로 실시되고 전개된 후에야 명확해질 것이다.

현재로서는 정치적·외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도와 전력 소모의 리스크가 공존하는 상태다.


5. 총평


수보로프 공세는 더 이상 ‘승리를 위한 공세’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국가가 내부에서부터 붕괴해 가면서도, 스스로를 앞으로 밀어붙이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신병들은 고장 난 소총과 빈 탄창을 들고 전선으로 내몰렸으며,

기갑 부대는 급히 찍어낸 전차와 노획품을 섞어 간신히 편제를 유지했다.

병참망은 진흙에 파묻힌 채 파괴된 도로와 철도 위에서 숨을 헐떡였고,

군수품의 절반 이상은 이제 자국이 아닌 미국의 랜드리스 상자에서 나왔다.

작전 구상은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할 체력은 이미 소진돼 있었다.

전략적으로는 ‘결정적 기동’이라 불렸지만, 실상은 전쟁의 균형을 바꾸기엔 너무 늦은 발걸음이었다.

붉은 군대는 아직 싸울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이길 수 있는 군대’는 아니었다.



에필로그 : 언어의 무게


모스크바 중심부 티베르스카야 거리, 라디오 모스크바의 메인 스튜디오.


두꺼운 흡음벽 위에 설치된 붉은 조명등이 켜졌다.

아나운서 유리 레비탄은 고정 마이크를 잡고 간단하게 발성해 보았다.


"붉은 군대는 멈추지 않습니다—"


정치 검열관은 그의 원고를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곧 쿠투조프 공세의 성공 방송이 있을 예정이었다.


핀란드, 탈리 인근. 제1 참호 지역.

한여름 답지 않은 싸늘하고 끈적한 공기가 노년의 소련 작업부들을 뱀처럼 휘감았다.

낮게 구름이 낀 하늘 아래 포연이 식은 지면은 진흙과 잔해, 그리고— 악취로 가득했다.

그들은 별다른 기계 없이 삽으로 죽은 동무들의 몸을 퍼내고, 포대로 시신을 정리하고 있었다.


"거기 조심해. 불발탄 있어."


"응? 아, 진흙 속에 처박혀 있었군. 아마 괜찮을 걸세."

작업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박격포탄을 쳐다보고는 거길 피해서 삽을 펐다.

"이것 봐... 이 병사는 아직 애송이잖아."


"전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군복 봐라. 핀란드 놈이잖아. 그냥 저쪽으로 던져."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잠시 삽을 멈추고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피와 흙이 뒤섞인 얼굴은, 아직 수염조차 없었다.


"쯧, 불쌍하긴..."


그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흙더미 위에 올려진 군번줄이 살짝 흔들렸다.


그 옆에 올려진 미국제 라디오에서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внимание, внимание, говорит москва."

주목, 주목, 모스크바에서 말씀드립니다.


붉은 군대는 핀란드 방면과 발트 방면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레닌그라드 전선군과 카렐리야 전선군은 카렐리야 지협을 돌파하고,

비보로크와 탈리를 해방하였습니다.

붉은 군대의 용감한 전사들은 불굴의 의지로 북방의 적을 격퇴하였으며,

핀란드 군대는 궤멸 직전에 있습니다.


발트 해안 방면에서도 눈부신 전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1 · 제2 · 제3 발트 전선군은 에스토니아, 프스코프, 오르샤, 모길료프를 해방하고,

리가로 향하는 진격로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동지들이여, 붉은 군대는 멈추지 않습니다.

레닌의 대의 아래, 스탈린 동지의 영도 아래,

우리는 승리를 향해— 최후의 한 걸음까지 나아갑니다!


이곳은 모스크바입니다. 라디오 모스크바가 전합니다.


라디오는 계속 흘러나왔다.

"붉은 군대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탈리의 참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멈춰버린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말들은 참호를 건너지 못했고,

진흙과 피 사이에서는 흙과 피의 냄새만이 대답했다.


다시 라디오 모스크바.


방송이 끝나자 붉은 등이 꺼졌다.


레비탄은 잠시 마이크를 바라보다가, 대본을 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잉크로 덮인 문장 하나— "손실 없음." 이 구겨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에는 지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듯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스크바는, 여전히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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