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없는 왕국의 섭정, 해군 없는 나라의 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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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지크] 시리즈
제1부 철혈의 지배
1944년의 장
6-1장. 44년 9월 : 판처파우스트 작전 : 왕 없는 왕국의 섭정, 해군 없는 나라의 제독
1944년의 헝가리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참전 이전부터 이미 여러 문제를 안고 있던 이 나라는
지리적 위치와 정치적 의존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독일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헝가리는 추축 동맹의 일원으로 서방 연합군과 소련에 맞서 전쟁을 시작했으나,
전선에서의 독일군 승전은 헝가리의 내부 문제—경제 붕괴, 식량난,
그리고 급속히 팽창하는 국내 파시스트 세력—을 단 하나도 개선하지 못하고 있었다.
"총동원령을 발령하라!"
"스탈린과 공산주의자에게 죽음을!"
왕궁 앞 광장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화살십자당 민병대가 구호를 외쳤다.
헝가리 왕국의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는 복장을 점검했다.
거울 앞에 선 그는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제독 반지를 잠시 바라봤다.
'해군 없는 나라의 제독이라...'
그는 반지를 내려놓고 궁정 회의실로 걸어 나갔다.
섭정 비서실장의 개최 선언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정무 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리보프에 접근 중인 소련군에 대한 문제입니다."
미클로시는 조용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 회의의 결론이 헝가리의 운명을, 길게는 한 세기를 좌우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일어서서 말했다.
"각 관들은 총리의 주관으로 발언하시오."
총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답했다.
"예, 섭정 각하. 먼저 국방장관께서 우리가 소련군을 저지할 수 있는지 판단하여 주십시오."
"... 현재 군은 재편 중이며 보급 상황을 고려할 때 즉각적인 방어 태세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독일 측이 약속한 증원이 도착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국방장관의 대답에서 총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즉각적인 방어는 어렵다면서,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국방장관은 눈을 피한 채 서류를 덮었다.
"현재로서는… 독일의 결정이나 지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회의실의 공기가 가라앉고, 발언 대신 문서를 넘기는 소리만이 회의실에 울렸다.
"그렇다면 다른 길이 있습니다."
외무장관이 정적을 깨고 손을 들었다.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소련은 우리와 전면전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독일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나 했더니 당연한 말을."
"... 실은, 이미 그들과 조용히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회의실에는 다시 잠시 침묵이 찾아왔지만, 그 온도는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참모총장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지금 공산주의자 놈들에게 이 나라를 갖고 흥정 중이시다?"
"잠시, 진정하시오. 계속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총리가 그를 저지했다.
"소련 측은 자신들의 목표는 오로지 독일뿐이라고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자신들과 적대하지 않고, 발칸의 독일군을 무장해제 시킨다면 추축 동맹에 가담한 것을 잊어주겠다고..."
"미친 소리요! 정치인들의 편협한 언사로 군의 희생을 모욕하지 마시오!
독일군과 우리 군은 같은 전선에서 볼셰비키와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워왔소!"
참모총장의 격양된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총리는 군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참모총장, 그 누구도 군의 공을 폄하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군이 피를 흘려 지킨 이 땅을, 무모한 명예심으로 잃을 순 없습니다."
그의 말을 이어받아 외무장관도 계속 말했다.
"저 또한 전선의 희생을 잘 압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많은 피를 흘렸잖습니까?
지금 이상의 피가 계속 흘러내린다면, 헝가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게 섭정 각하께서도 바라시는 길일 것입니다."
갑자기 호명된 호르티는 눈을 찌푸렸다.
그가 답하지 않자 회의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들은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는, 거리낌 없이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이든 나라를 지키는 게 우선입니다."
"소련과 협상해야 합니다!"
"군의 사정은 어렵습니다. 인력 문제와 보급 상황이-"
"총동원령 발효! 공산주의자로부터 조국 수호!"
의자 끄는 소리와 서류가 책상에 던져지는 소리가 겹쳤다.
회의장은 점점 혼돈과 고성 속에 빠져들었다.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호르티는 회의실에 정치가와 군인을 보는 대신 벽면을 살폈다.
벽면에는 전 국왕, 페렌츠 요제프 1세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왕 없는 왕국의 섭정, 나는 누구인가. 왕이시여, 이 나라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호르티 미클로시는 요제프 1세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만하시오. 오늘의 논의는 여기까지입니다."
호르티는 손을 들어 회의장의 소란을 제지했다.
"의견은 충분히 들었습니다. 각 부처는 현 상황을 정리하여 내일 재협의에 대비하시오.
지금은 그 무엇보다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외무장관은 시선을 내렸고, 참모총장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르티는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회의는 해산합니다."
결정은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정을 미뤘다.
그는 이것이 혼돈 속에서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믿었다.
새벽 공기가 눅눅했다. 창문 틈으로 석탄 연기가 스며들었다.
"섭정께서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셨소."
참모총장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그렇습니까."
부다페스트 주재 독일 주재무관, 폰 브뤼케 대령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연기가 피어오르자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더 탁해졌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요. 그분은 늘 신중하니까."
대령은 잠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런 새벽에 절 부르신 이유는 따로 있으실 테지요?"
"바로 그거요. 어제 회의에서 정치인들의 추악한 수작이 밝혀졌소.
그들은 이미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았소.
이 나라, 그리고 나라를 위해 피 흘리고 있는 자들의 목숨값을 적들과 흥정하고 있었단 말이오."
"그런 징후가 아프베어(국방군 최고사령부 해외/방첩국)에 전혀 포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소련군의 빠른 남하가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나 보군요."
"난 전혀 몰랐소. 이 자식들이 감히 소련과 내통하고 있을 줄은!"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우리에게 귀띔하신 이유가... 안전한 철수를 위한 배려는 아니겠지요?"
"무슨 소리요, 철수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금 해야 할 일은 저 내통자 놈들을 모조리 척결하고, 국가에 질서를 세우는 일이오!"
"그 말씀을 들으니 안심입니다. 어느 정도의 지원을 원하십니까?"
"그쪽이 원하는 대로 하시오. 우리가 지원할 테니."
"정말이십니까? 저희는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 될 게 뭐가 있겠소? 원하는 대로 처리하시오!"
대화는 끝났다.
브뤼케는 참모총장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상관, 무장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에드문트 페젠마이어에게 연락했다.
페젠마이어는 암호망을 통해 짧은 보고서를 총통 본부와 무장친위대 최고지휘부로 송신했다.
답신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전 승인. 질서 회복을 우선한다.’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특수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열차들이 다가왔다.
젊은 국경 검문관은 열차 내부를 슬쩍 쳐다봤다.
차창 안에는 검은 제복을 입은 무표정한 얼굴들이 앉아 있었다.
검문관은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하며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국경 초소의 철문은 천천히 올라갔다.
검문은 없었다. 서류도 질문도 없었다.
수문장은 독일어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상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신호봉을 들었다.
기관차는 짧게 증기를 내뿜으며 다시 나아갔다.
열차가 지나가고서야 젊은 국경 검문관은 모자를 벗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는 떨리는 몸을 가다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의자에 앉았다.
다시 기관차가 진동하기 시작하자, 열차에 탑승한 대원들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선두 열차에는 브란덴부르크 그룹 대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복의 단추는 반짝일 정도로 닦여 있었고, 얼굴과 무장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총기를 손질하는 소리와 작전계획서를 넘기는 서류만이 객실 안에 울렸다.
금속과 종이가 긁히는 소리가 인간의 소리를 대체했다.
후미 열차에는 프리덴탈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지도자가 선창 했다.
"헌신과 복종을!"
대원들은 후창 했다.
"질서와 정화를!"
그리고 객차는 성당처럼 고요해졌다.
그들이 탄 열차는 조용히, 하지만 치명적으로 헝가리의 깊은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날 늦은 밤, 부다페스트에서는 여러 모습들이 겹쳐 있었다.
카페의 유리창 너머로 흰 조명이 비쳤다.
재즈 피아노 연주자가 단상에 오르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그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즐겁게 웃으며 술잔을 나눴다.
오늘만큼은 사람들은 전쟁을 잊었다. 아니, 잊고 싶었다.
섭정 집무실의 조명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호르티는 서류를 바라보다가 잠시 창가에 서서 다뉴브 강 건너편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일렁이는 불빛 아래에서는 사람들의 삶이 느껴졌다.
미뤄진 결단이 아직 그의 마음속에 납덩이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결단을 했어야 하는가? 하지만 뭐를, 어디를 결단했어야 하는가?
동맹의 탈을 쓴 갈취자이자 폭군인 독일? 이질적인 적국 소련? 유럽에서 추방된 연합국?
그는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간다 한들 결단을 내릴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검게 도색된 독일 특수 열차가 영업을 마친 역의 플랫폼에 정차했다.
몇 명의 헝가리 철도 경비원이 그 열차를 확인하고 흩어졌다.
아무도 그들을 보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역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왕립 헝가리 육군 제1군단이 그들을 인도했다.
독일 부대들은 미리 준비된 자동차에 분승하여 작전 대기지점으로 이동했다.
몇 시간 뒤, 헝가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아침이 밝았다.
눈부신 태양이 부다 언덕을 비추며 떠올랐다.
"소련의 앞잡이 현 정부는 물러나라!"
"군은 당장 움직여라!"
"총동원령을 발효하고 소련과 맞서 싸우자!"
"일어나라 헝가리! 영웅의 후손들이여, 영웅들의 나라여!"
이른 새벽부터 대규모 시위가 부다페스트를 덮쳐왔다.
화살십자당의 노골적인 지원을 받은 민병대와 자경단, 우익 조직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공기 속에는 석탄 연기와 화약 냄새가 뒤섞였고, 가게들은 파괴되었다.
시민들은 폭력을 피하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지 않았다.
대규모 파업도 이어졌다.
정부 시설은 물론, 교통과 통신 인프라도 멈추기 시작했다.
혼란에 빠진 헝가리 정부는 긴급히 회의를 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왜 갑자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겁니까?"
호르티가 말을 꺼냈다. 그는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마치 깊은 물이나 늪에 빠져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모두가 대답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참모총장이 말을 꺼냈다.
"계엄령을 발효하고 군을 동원해서 소요 사태를 제압합시다.
왕립 헝가리 제1군단은 부다페스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고작 시위입니다! 겨우 이런 일에 계엄령을 발효하고 군을 동원하자니요!"
총리가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외쳤다.
"고작 시위라니요. 이건 폭동입니다.
소련의 접근에 흥분한 공산주의자 놈들이 일어난 겁니다."
"아니, 아직은 아닙니다. 민병대가 섞였다고 해도 경찰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총리와 참모총장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를 조율해야 할 국방장관은 호르티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결국 둘의 다툼 속에서 호르티가 대답했다.
"그만. 그만하시오.
일단 시위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합시다.
만약 정말로 공산주의자들의 소요라면 그때 계엄령을 검토하고 군을 투입합시다."
다툼과 혼돈을 막자. 그리고 결단을 미루자. 언젠간 상황이 좋아질 날이 올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섭정 각하-
제1군단의 주둔지가 폭도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군은 자위 상 부득이하게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 뭐라고요...?"
새벽의 영웅 광장은 군용 차량과 화살십자당의 깃발로 뒤덮여 있었다.
건국의 영웅들이 서 있는 기둥 아래에서, 새로운 폭군들이 질서를 외쳤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무기가 광장에 들어왔다.
왕립 헝가리 육군 제1군단의 호송 아래, 독일 특수부대가 대열을 갖췄다.
브란덴부르크 그룹은 국가의 신경망을 장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목표는 통신국, 방송국, 철도본부, 전력 시설이었다.
그들은 준비된 차량으로 시위대가 점령한 거리를 통과했다.
눈이 마주친 자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발소리와 명령문만으로 건물들은 점령되었다.
프리덴탈 그룹은 권력 기관을 장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목표는 왕궁, 경찰청, 국방부였다.
그들은 총을 겨누지 않았다.
대열을 이루고 군가를 부르며 진입했다.
검은 제복 위의 흰 완장이 새벽빛을 받아 반짝였다.
잠시 뒤, 그 소리도 잦아들었다.
저항도, 명령도 사라졌다.
부다페스트에는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프리덴탈 그룹 제3분견대가 왕궁 정문을 장악했다.
잠시 뒤, 화살십자당 민병대가 도착했고, 통제권은 그들에게 인계되었다.
차량에서 내린 한 남자가 분견대의 장교에게 다가갔다.
독일 군인들이 그를 위해 궁정의 문을 열었다.
그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남자는 분견대와 함께 궁정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왕국의 운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
"아니 그러니까, 화살십자당이 시위에 개입하고 있는 정황이 확인되었다니까요!"
총리가 소리쳤다.
"글쎄요. 제가 정보기관에 받은 보고에 따르면 역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입니다만."
참모총장은 딴청을 피우며 답했다.
호르티는 완전히 질려있었다.
비슷한 문답만 한 시간째 지속되고 있었다.
회의는 정체되고,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
그때, 한 장교가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섭정 각하! 왕국 외곽에 무장 병력이 접근 중입니다!"
"그게 무슨... 어떻게 된 일이오? 어디에서 온 병력이고, 누가 이끄는 거요?"
아연실색한 표정의 총리가 말했다.
"참모총장! 무슨 일인지 해명하시오!"
외무장관이 책상을 내리치고 서류를 헤치며 외쳤다.
하지만 참모총장은 침묵했다.
밖에서는 이따금 총성이나 병력의 구령, 차량 소리와- 독일 군가가 들리기 시작했다.
호르티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문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 왕궁 정문을 통과하고 걸어오는 검은 제복의 행렬과 한 남자-
화살십자당의 당수 살러시 페렌츠가 보였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나라에는 이제 아무 목소리도 남지 않았구나.
미안하오, 국왕.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소."
그 직후, 회의실 문이 큰 소리와 함께 열렸다.
프리덴탈 그룹 제3분견대 대원들이 천천히 들어왔다.
참모총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오. 곧 질서가 복원될 것입니다."
좌우로 도열한 분견대를 사열하듯, 살러시 페렌츠가 걸어왔다.
"섭정 각하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라."
호르티가 저항하듯 말했다.
"무슨 일인지 설명부터 하시오."
"나라가 결단했습니다, 섭정 각하. 이제는 새로운 질서가 세워질 시간입니다."
"질서? 결단? 누가 결단했다는 말이오?"
살러시는 짧게 웃으며 답했다.
"역사입니다, 각하."
그의 말과 함께 회의실의 시계가 일곱 시 반을 알렸다.
회의실 밖에서는 ‘질서의 회복’을 외치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부다페스트에 질서는 없었다.
오로지 복종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독일은 헝가리 내부의 친독파, 총 참모부장 베레그피 카로이 대장을 통해
헝가리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련과의 화평 기조를 파악했다.
이후 그의 요청 하에 특수부대 중심의 소규모 부대를 파견하여 정부 주요 기관을 마비시키고
친 파시스트 조직 ‘화살십자당’을 중심으로 한 신정권을 세우기로 하였다.
판처파우스트 작전에서는 대규모 부대나 인원, 장비가 투입된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설과 기관 장악에서는 병력의 움직임 만으로 상황이 종결되었다.
※ 작전 결과, 헝가리 수도권의 통신·행정·군사 지휘 체계는 12시간 내 완전히 장악되었다.
사상자는 양측을 합쳐 50명 미만으로 추정되며, 이는 무혈 정변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소련과의 화평을 시도하려던 헝가리의 계획은 실패하였다.
이후 헝가리를 이끌게 된 살러시 페렌츠는 집권 직후 총동원령을 발효하였고,
소련이 접근 중인 리보프와 헝가리를 이어주는 카르파디아 산맥의 통로,
우즈호르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가용한 모든 자산을 투입하여 방어를 시작했다.
판처파우스트 작전은 ‘전면전이 아닌 정보전·심리전 중심의 정권 교체’라는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반기 유럽 전선에서 보기 드문 유형이었다.
그러나 이 ‘소리 없는 아우성’은 헝가리의 실질적 주권 상실로 이어졌으며,
국가의 생존 방향을 독일의 의지에 종속시켰다는 점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라디오와 신문들이 새 정권의 첫 조치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총동원령 발효’ ‘카르파디아 회랑 봉쇄’ ‘우조호르드 요새화’ 같은
굵직한 문구들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악했다.
1면에 실린 살러시의 연설 사진은 단호하고 장엄해 보였지만,
연단 뒤로 늘어선 독일 장교들의 무심한 표정과 수첩을 들여다보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헝가리의 모든 거리와 광장에는 징집 통지서가 뿌려졌다.
군 복무와 징병을 알리는 차량이 골목을 누비고 사람들을 끌고 갔다.
민병대, 자경단, 예비군, 전역자 할 것 없이 모든 자들이 군대로 끌려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군대에는 장비가 부족했고, 독일에서 장비를 실은 차량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은 형편없는 장비와 보급으로 가혹한 훈련만 받고 있었다.
공장의 여성 노동자와 징집된 소년부터 총리 살러시 페렌츠까지,
모든 헝가리의 국민은 단 하나만 생각했다.
제발, 이 기나긴 전쟁이 끝나기를.
제발, 독일이 승리하기를.
제발, 승리의 과실이 우리에게도 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