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음이 건넨 시원한 제로 콜라
복도식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게 된 이후,
내 일상엔 새롭게 등장한 두 분이 있다.
경비 아저씨, 그리고 청소 아주머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작업을 하다 보면 복도에서 ‘싹—싹—’ 하는 빗질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왜인지 모르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어느새 그분들의 존재가 내 하루의 배경음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다. 숨이 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복도에서 들려오는 빗자루와 쓰레받기의 소리가 들렸다. 한파는 그나마 낫다고 한다.
움직이면 열이 나고, 껴입으면 되니까.
하지만 폭염은 벗어도 덥다. 그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 소상공인, 공사판 인부, 청소부 아주머니— 그분들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졌다.
며칠 동안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청소하시는 기척이 들리자 제로 콜라 한 병을 들고 문을 열었다.
길고 긴 복도를 혼자 청소하던 아주머니는 작고 연약한 체구였다.
“저기 아주머니! 이거 드세요.”
“에구, 이게 뭐여? 고마워유~”
그날을 시작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시원한 음료를 전하며 우리는 짧은 담소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아유, 5층 여자 때문에 속상해죽겠어! 내가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하는데, 청소 제대로 하라며 매번 나와서 뭐 라 하는디~ 이전 사람이 안 한 데까지 내가 다 닦았는디도 경비 아저씨한테까지 가서 일 못한다고 바꾸라잖혀!”
“와, 그 아줌마 정말 못 됐네요! 제가 보기엔 아파트 진짜 깨끗해요! 아주머니 너무 잘하시는데요? 그런 사람들은 괜히 갑질하는 거예요. 유럽 가보세요, 청소부들 진짜 설렁설렁해요! 우리나라는 부모님 세대분들이 너무 착해서 그런지, 너무 열심히 하세요. 대충 하세요, 대충~!”
“호호, 고마워유.”
그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건,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요즘은 너무 더워서 새벽같이 나와요. 점심 먹고 다시 청소할 땐 땀이 하도 나서, 한번 수돗가에서 찬물로 목을 씻었어. 안 그러면 쓰러질 것 같아서.”
그 말을 듣는데, 목이 메었다.
이 넓은 아파트 한 동을 단 한 사람이 청소한다니. 적어도 두 사람은 있어야 하는 일 아닌가.
다음 주 수요일,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밝은 색 티셔츠를 입고 두근두근한 눈빛으로 문 앞에 서 계셨다.
“티셔츠 너무 예뻐요! 밝고 세련됐어요.”
“그래요? 호호, 고마워유!”
우리는 시원한 음료와 과일을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손녀 자랑, 아들 자랑, 그리고 다시 5층 아주머니 하소연까지.
“제가 알아요. 아주머니 진짜 잘하세요.
그 사람은 그냥 못된 거예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나는 그 억울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진심을 다해 공감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경비 아저씨께도 직접 말씀드렸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아주머니 정말 꼼꼼하게 청소하세요.”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날의 티타임은 그렇게 웃음으로 끝났다.
나는 아주머니의 옷차림이 참 좋았다.
줄무늬 티셔츠, 우산 무늬, 물방울 무늬...
청소하기 편한, 그러나 소박하고 귀여운 티셔츠들.
체면보다 순수, 꾸밈보다 ‘나답게’ 입는 그 옷들에서
삶에 대한 정성이 느껴졌다.
그런 옷들은 단순한 작업복이 아니라,
자기 하루를 예쁘게 꾸미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 아주머니의 성실함, 삶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옷에 스며 있었다.
진달래처럼 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그분을 더 이상 마주치지 못하지만,
언젠가 다시 뵙게 된다면 꼭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주머니, 그때 진짜 멋졌어요.
그리고 지금도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