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면 계절이 들어오던 시절
어렸을 때부터 결혼 전까지 나는 줄곧 빌라에서 살았다.
초등학생 때 살던 빌라는 1990년대식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담과 뜰이 있는 집이었다.
앞뒤로 마당이 있었고, 나무와 꽃이 심겨 있었다.
오래된 빌라였지만, 나는 그곳을 정말 사랑했다.
창문을 열면 그날의 계절과 날씨가 고스란히 들어왔다.
봄에는 라일락 꽃향기가, 여름에는 매미 소리가, 가을에는 낙엽 냄새가, 겨울에는 눈과 서늘한 바람이.
빌라와 빌라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어서 창문을 열면 크진 않아도 작은 풍경이 보였다.
나는 그 사이 공간에서 동생들과 친구들과 함께 골목대장이 되어 놀았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그 빌라들의 뒤뜰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텃밭이 있던 자리, 나무가 있던 자리는 어느새 빌라의 1층 주차장으로 변했고, 새로 지어진 빌라들은 더 크고 화려했지만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풍경이 너무 슬펐다.
중학생이 되면서 우리는 신식 빌라로 이사했다.
겉모습은 새로웠지만, 예전처럼 자연을 벗 삼아 놀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모든 새 빌라들이 그랬다.
빛나던 나무, 새소리, 바람이 머물던 자리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동네의 오래된 주택들이 무너지고 새 빌라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일 아닌 줄 알았지만, 공사 소음 속에서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혹시 우리 창문 앞에도 다른 빌라가 세워진다면?’
그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옆 빌라와의 거리는 1미터도 되지 않았고,
창문을 열면 햇살 대신 회색 벽이 들어왔다. 사계절 내내 그늘이 졌다.
내가 사랑하던 따스한 햇볕은 완전히 사라졌다. 알고 보니 옆집은 불법으로 층을 더 올렸다고 했다.
벌금을 내도 이득이라며 그렇게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저 말없이 창문을 닫았다.
그날 이후로 우울감이 찾아왔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집, 벽으로 막힌 시선. 그래도, 그 하나로 내 일상이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다.
우리 가족은 여전히 웃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인간은 결국 적응의 동물이니까.
햇살은 잃었지만, 사람의 온기는 여전히 있었다.
결혼 후 나는 복도식의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파트에 대한 로망은 없었다. 그저 창문을 열었을 때 햇볕이 들어오고, 풍경이 보인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오래된 아파트는 어쩐지 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리게 했다. 그 향수 어린 분위기가 좋았다. 아파트에는 경비 아저씨와 청소부 아주머니가 계셨고, 그분들의 일상이 내 하루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복도에서 ‘싹-싹-’ 빗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마음이 고요해졌다.
요즘은 때때로 그 생각을 한다. 어릴 적 빌라의 뜰이 사라진 건, 단순히 풍경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여백이 사라진 순간이었다는 걸.
창문을 열면 계절이 들어오던 그 시절,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벽과 벽 사이에 갇혀 살며,
무언가를 느끼려면 일부러 창문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나무가 보이는 창문을 좋아한다.
그 풍경은 단지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삶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자세를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