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두 사람, 그리고 나의 시작
아빠는 제주 출신의 고아다.
법관이 꿈이었지만,
가난하고 보호자가 없던 어린 남자애가
갈 수 있는 길은 상고뿐이었다고 한다.
성적이 좋아도 취업이 먼저였던
학교는 대학 원서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는 교장실에 쳐들어가
깽판을 쳤고, 원서를 받아냈다.
그 이야기는
아직도 그 학교의 전설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아빠는 당당히
대한민국 최남단 섬에서
내놓아라 하는 수재들만 간다는 서울의 k대학에 입학했다.
시골 고학생의 졸업까지는 쉽지 았았으리라.
졸업 후 고시 준비를 위해
전라도 완도, 그중에서도 외딴섬 신지도.
그곳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하숙집 딸인 엄마를 만나 결혼했다.
엄마는 고작 20살이었고, 아빠는 고시생이었지만
두 젊은 부부는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내가 생긴 것을 알고,
아빠는 모든 걸 접고
은행에 취직했다.
바라던 길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30대 중반에
최연소 지점장이 되었다.
부부는 젊은 나이에
빠른 성공을 거두었지만
늘 검소하고 절제 된 삶을 살았다.
그런 부모님이 유일하게 아낌없이 퍼주던 대상은,
자식이었다.
좋은 건 늘 자식에게 먼저 주셨고,
손에 든 걸 쥐여주던 분들이셨다.
아빠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었지만,
자식에게만큼은
무엇이든 다 해주셨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셨다.
본인들에게는 한없이 인색했지만,
자식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검소했고, 절제하셨지만
자식의 몫은 늘 남겨두었다.
그땐 몰랐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정말 몰랐다.
그들의 열심의 결과로 나의 일상이 평온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냥,
어른이 되면
다 그렇게 되는 건 줄 알았다.
그. 때. 는.
어른이 된다는 건
시간이 흐른 결과가 아니라 버틴 날들의 총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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