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내가 부끄러워 다행이야
이름이 흔해서 종종 전화가 잘못 걸려온다. 회사에서 한참 업무에 집중하던 오후, 낯설고도 익숙한 이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전 직장에서 사회생활 초반을 함께 보낸 동료였다. 딱히 좋았던 사이도 아니고 따로 연락할 거리가 없는데 뭐지? 긴가민가하며 조심스럽게 "...여보세요?"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 낯설고도 익숙한 이름의 동료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허억!"하고 외마디 탄성을 남기고는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역시나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잘못 건 거였구나. 잠시 후 '잘못걸었어요' 띄어쓰기도 마침표도 없이 문자가 왔다. 어지간히 놀래고 끊기 급했나 보다. 그 동료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었나보다. 그렇게 잘못 걸려온 전화로부터 잠시 20대의 나를 마주했다.
지금의 나는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좀처럼 남에게 원망하는 소리를 하거나 화 한번 내는 일이 없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차분하냐고 한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사뭇 달랐다. 감정과 열정을 주체 못 해 남들에게 그걸 엉망진창으로 분출하고 다녔다. 일에 대한 열정과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넘치다 보니 내 의견에 반대하는 동료들에게 공격적으로 대하고 적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전화를 건 동료는 타 직군에서 전입해 온 동료로, 초반에 우리 팀에 적응하느라 조금 애를 먹었다. 내가 그 동료의 일을 대신해주어야 하는 경우가 어쩌다 있었는데, 팀장이나 임원 앞에서는 내가 낸 아이디어나 내가 한 일까지 본인이 한 것처럼 말한다고 (내 관점에서) 느껴 왜 그러냐고 따진 적도 있다.
다른 동료에게도 회의에서 계속 내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자 버럭 하고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내 맘대로 일이 안 풀리면 노트북을 꽝하고 내려놓고 나가버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기도 했다. 동료평가에서도 업무 성과는 좋으나 스트레스 관리를 잘 못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고 내가 참 망나니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부끄러워졌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기에 지금 과거의 나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보아도 '다 그럴 때가 있어.' 하고 넘기게 된다.
며칠 후, 집에 가는 길에 아무 생각 없이 켠 유튜브에서 유시민 작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과거의 내가 부끄럽다면 성장하고 있는 거니 너무 괴로워 말라'고 한다. 다행이다. 나는 그때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나 보다.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 조금은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