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미국 네바다주의 사막 끝, 황량한 대지 위에 한 여자가 서 있다.
그녀의 이름은 펀. 손에는 오래된 머그컵, 뒤에는 낡은 흰색 밴 한 대.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펀은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이다. 아니,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집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녀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고, 오래 다니던 공장은 문을 닫았다.
도시도, 사람도, 직장도 펀을 잊어버린 듯 조용히 멀어져 갔다.
그러나 그녀는 슬픔을 붙들고 주저앉는 대신, 차에 짐을 싣고 떠났다.
떠돌이 노동자, 현대의 노매드로서, 계절에 따라 일하고, 도로 위에서 씻고,
타인의 땅에서 밤을 보내고 별이 총총한 하늘을 천장 삼아 매일 새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막 한가운데서 그녀는 혼자 앉아 있었다.
말없이, 움직임 없이, 마치 그 황량한 공간의 일부인 듯.
그때 흐르던 음악,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Petricor. 피아노의 맑은 음이
바람처럼 그녀의 어깨를 스쳐갔다.
세상이 정지한 듯한 그 순간, 펀은 고요히 중얼거린다.
“난 괜찮아. 정말이야.”
말은 작았지만, 그 안엔 천천히 회복되는 한 생의 기운이 있었다.
그녀는 가족을 잃었지만, 다른 길 위에서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만난다.
같은 상처를 가진 노매드들. 함께 모닥불을 피우고, 조용히 밤을 지새우는 이들.
그녀는 말한다.
“우린 작별하지 않아. 그냥, 언젠가 다시 만나는 거야.”
삶을 내려놓지 않고, 다시 삶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말이었다.
< 떠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
집을 잃고 길 위에 남겨졌을 때
나는 나를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부터 비로소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멀어졌던 것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삶과 마주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