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 더 씨

- 바닷가엔 용서가 없다

by 이한

이야기는 눈발이 날리는 항구 도시, 맨체스터에서 시작된다.
작은 보일러 수리를 하며 하루를 보내는 남자, 리 챈들러. 무표정한 얼굴, 사람들과의 최소한의 대화,
밤마다 술잔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 남자의 삶은 이미 어디서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형이 죽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형의 아들, 패트릭의 법적 후견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유언이었다.


그는 다시 맨체스터로 돌아온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 도시.
모든 것을 앗아간 그 바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


그의 과거가 점점 드러난다. 아이 셋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날, 실수로 집에 불이 났고
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빠’가 아니었고, 누구의 ‘남편’도 아니었다.
그는 살아있지만 이미 생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이었다.


패트릭은 평범한 일상을 원했다. 하키, 여자친구, 친구들과의 대화. 하지만 리는 그 일상을 버틸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그에겐 과분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함께 걷는다. 눈 쌓인 바닷가를 지나며 그는 말한다.

“나는… 그냥 안 돼. 여기서 다시는 살 수 없어.”


그 말엔 변명이 없다. 이해해 달라는 간청도 없다. 그는 죄책감을 끌어안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거리만큼
그 바다에서 멀어지려 할 뿐이다.


그 어떤 영화도 이토록 조용히, 그리고 무섭게 ‘용서받을 수 없음’을 말한 적이 있을까.


삽입곡은 영화의 전반을 관통하는 클래식, Handel의 <He Shall Feed His Flock>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기도처럼 잔잔히 흐르며 리의 내면에 맴도는 회한과 덮을 수 없는 상처를 대변한다.





< 너를 돌보지 못했던 나>

다 괜찮아질 줄 알았어.
시간이 지나면, 내가 다시 웃을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아니었어.
나는 그날 거기서 이미 다 타버렸어.

너를 돌보지 못했던 나,

그걸 안고 살아야 하는 나. 사람들은 말하겠지,
"이제는 너도 살아야지."


그래. 살아는 있을게. 하지만 그게
산다는 뜻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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