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혔던 이름, 다시 불려진 이유
우리는 단군을 '처음'이라고 배웠다.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문장을 외우며,
우리 역사의 첫 페이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이름, 단군은 한참 뒤, 13세기 고려에서 처음으로 역사책에 등장한다.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세웠다.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 『삼국유사』, 일연, 1281년
조선의 시조라 불리는 인물이, 천 년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전해 내려오지 않는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지만.
단군은 애초부터 존재했던 이름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소환된 이름'이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면 논란이 될까?
단군이야기는 역사일까, 상징일까?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려 할 때,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곰은 인내심을 가지고 쑥과 마늘을 먹으며 인간이 되었고, 그 곰이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하고, 그 아들로 태어난 이가 단군이다. 이건 단순한 설화가 아닌 것 같다. 질서, 복종, 인내, 선택받음이라는 가치가 서사 안에 숨어 있다. 호랑이는 중도 포기하고, 곰은 참고 견디다 인간이 된다. 그 ‘곰’의 자손이 나라를 세운다.
단군이야기는 곧 이데올로기적 기획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곰과 호랑이,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이들은 모두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역할을 가진 존재다. 곰은 인내와 복종의 상징이다. 호랑이는 강하지만 거칠고, 결국 포기함으로써 선택받지 못한다. 하늘의 아들인 환웅은 곰이 인간이 되도록 도와주고, 그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나라, 즉 질서 있는 세계가 태어난다.
이 서사는 말한다.
“세상은 인내하는 자가 이끌어야 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나라를 세운다.”
이건 무슨 말일까? 바로 ‘정당한 통치의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배자는 하늘의 명을 받은 자(天命),
백성은 그 뜻에 따라 복종하고 따르는 존재. 이런 구도 속에서 단군은 단지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나라를 세울 자격이 하늘로부터 부여된, 정당한 건국자가 된다. 이 구조는 단군을 소환한 일연의 시대적 필요와도 맞닿아 있다. 당시 고려는 몽골에 굴복한 상황이었고, 지배 엘리트들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정체성의 근거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단군이야기는 이념적 기획이 된 것이 아닐까?
과거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나라가 여전히 '하늘의 뜻 아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는 작업말이다.
단군이야기를 처음 기록한 일연은 고려 말의 고승이었다. 그 시기는 몽골의 침략으로 국토가 초토화되고, 고려 왕실의 정통성마저 흔들리던 시기였다. 고려는 자신이 고구려의 후손이라 주장했지만, 현실은 외세의 조공국으로 전락해 있었다. 바로 그때,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며 “고구려보다 더 먼, 단군의 나라 고조선”을 불러냈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민족의 기원을 다시 세우는 정치적 행위였다.
우리는 예부터 하늘의 자손이었고, 한반도의 주인이었다.
단군은 바로 그 선언의 상징이었다. 역사는 기억의 기술이다. 단군이 실제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오랜 침묵을 이기고 ‘기억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종종, 사라진 이름을 다시 불러오는 일에서 시작된다. 때로는 실재보다 신념이 먼저 기억을 만든다.
그리고 그 기억은, 국가와 민족이 존재한다고 믿게 만드는 공통의 역사가 된다.
단군은 실존 인물이었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왜 단군을 기억하기로 했는가?이다.
우리가 단군을 ‘처음’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이름은 더 이상 신화가 아닌 역사의 서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