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어떻게 무너졌을까?

- 위만이라는 외부인을 받아들인 선택

by 이한

고조선은 단군으로 시작되었다고 배우지만, 단군 다음의 기록은 놀랍도록 단절돼 있다.
다음 등장하는 이름은 위만(衛滿). 놀랍게도 그는 조선인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전환을 너무 당연하게 넘겨왔다. ‘단군이 나라를 세웠고, 위만이 들어와 왕이 되었으며, 결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켰다.’


이렇게 압축된 설명은, 사실상 하나의 질문을 가리고 있다.


왜 조선은 외부인을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위만은 침입자였는가, 개혁자였는가?


1. 위만은 누구였는가?

기록에 따르면, 위만은 본래 중국 사람이었다.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던 기원전 200년경, 정국이 혼란해지자 그는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피난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위만은 연나라 사람으로 무리를 이끌고 조선으로 망명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나라 사람’, 즉 중국 북부, 지금의 베이징 근방 출신이라는 뜻이다. 왕은 그를 받아들였고, 서쪽 국경 방어라는 요직을 맡긴다. 하지만 몇 년 뒤, 위만은 군사를 일으켜 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된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충성을 맹세한 외국인이 내부 권력을 장악해 버린 사건.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2. 위만은 정말 ‘중국인’이었을까?

‘연나라 사람’이라는 표현이 곧 오늘날의 ‘중국인’을 뜻하는 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중국은 근대 이후 형성된 개념이고, 기원전 세계는 다양한 제후국과 부족 국가들이 어지럽게 혼재하던 시대였다. 연나라는 고조선과 국경을 맞댄 접경국이었고, 위만은 엄밀히 말하면 ‘중원 제국’의 대표자라기보다는 경계인이자 이주민 지도자였다. 게다가 연나라 자체도 진나라에 멸망한 상태였기에, 그는 일종의 유랑 군사집단의 수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일부 역사학자들, 특히 이덕일 선생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위만은 단순한 망명자가 아니라 무장세력의 수장으로, 고조선 내부의 혼란을 틈타 왕위를 찬탈한 자였다.
– <우리 안의 식민사관> 중에서


또한, 위만이 철기 문화를 도입해 고조선을 ‘발전시켰다’는 주장은 기존 조선 문명을 과소평가한 식민사관적 시선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즉, 위만이 ‘중국인’인지, ‘조선을 위해 일한 통합자’인지, 아니면 ‘내부에 스며든 균열의 상징’인지는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3. 조선은 왜 그를 받아들였는가?

고조선은 그 무렵, 중국의 혼란과 맞물려 많은 유민, 상인, 세력가들이 국경을 넘어오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국경은 불안했고, 무역은 활기를 띠었지만 불균형했다. 위만은 그 틈에 등장했다. 무력을 지닌 자, 조직을 가진 자, 그리고 국경을 통제할 수 있는 자. 조선은 그를 통해 국경을 안정시키고 무역로를 정비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자기 안에 칼날을 들여놓는 일이 되었다.


4. 위만은 조선을 무너뜨렸는가?

그는 왕이 된 뒤 철저한 중앙집권 체제를 만들고, 중국과의 무역로를 장악한다. 그 결과, 조선은 경제적으로 한층 강력한 나라가 되지만, 한나라의 직접적인 관심과 압박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기원전 109년, 한 무제는 조선을 공격했고, 2년간의 전쟁 끝에 위만조선은 무너진다.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은 한나라에 의해 역사에서 지워진다.


5. 침입자인가, 개혁자인가

위만은 조선을 이끌고 ‘변화’를 만들었다. 그 변화는 성장과 위기의 양날이었다. 그를 배신자라고 보는 것도,

그를 새로운 가능성이라 보는 것도 모두 역사적 해석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둘 사이에 숨어 있는 질문을 발견하는 일이다.




역사는 단지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기억하려는 의지와, 잊고 싶은 망각의 힘이 맞서 싸우는 공간이다.

우리는 위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는 정말 조선을 무너뜨렸는가, 아니면 우리가 조선의 균열을 보기 싫어 외부인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것인가? 역사는 대답보다, 질문이 오래 남을 때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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