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열 가지 재앙

– 누구를 위한 표적인가

by 이한

열 가지 재앙은 단순한 징벌의 목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출애굽의 서사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누가 주권자인가’를 드러내는 신학적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 출애굽기 4장 22절

하나님은 단지 억압받는 민족을 해방시키는 인도자에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이라는 거대한 신정체제 안에서, 참된 신이 누구인가, 참된 주권자가 누구인가를 선언하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은 우연이 아니었다

학자 존 커런(John D. Currid)은 <Ancient Egypt and the Old Testament>에서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의 주요 신들과 체제에 대한 신학적 도전이었다고 말합니다.


피: 나일강의 신 ‘하피’에 대한 도전
개구리: 출산과 다산의 여신 ‘헤켓’
흑암: 태양신 ‘라’의 무력화
장자 죽음: 파라오 자신과 그의 후계자가 신이라는 이집트 왕정의 해체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의 재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포였습니다.


너희 신들이 아닌, 내가 참 하나님이다.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다는 말의 의미

재앙의 도중, 성경은 반복적으로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다”라고 말합니다(출애굽기 9:12 등).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충돌하는 듯 보입니다.


칼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에서 이 구절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뜻을 강제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은 허용하심으로 심판하신다.”


실제로 출애굽기에는 ‘바로가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표현과 ‘하나님이 강퍅하게 하셨다’는 표현이 병존합니다(출 8:15, 출 9:12).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강제적 개입이 아니라, 자기 완고함에 빠져드는 인간을 그대로 두심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 바른 신학적 해석입니다.


재앙의 절정, 어린양의 피

열 번째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는 단지 형벌의 절정이 아니라, 구속사의 서막이었습니다.


“너희는 어린양을 잡고…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내가 피를 볼 때 너희를 넘어가리라.” — 출애굽기 12장 7, 13절


이 사건에서 '넘어감'(pass over)[유월절유래]은 단지 피신이 아니라, 대속적 은혜의 시작이었습니다. 죄 없는 생명의 피가 대신 흘려짐으로써 심판이 지나갔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는 가장 강력한 구약의 상징입니다. 신약은 이를 분명하게 연결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장 7절


디트리히 본회퍼는 <저항과 복종>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허락하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뜻을 묵상하고 해석하게 하신다. 침묵은 무(無)가 아니다. 그것은 해석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언어이다.”


요셉의 감옥에서나 모세의 재앙 앞에서도, 본회퍼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날 우리는 열 가지 재앙과 같은 명확한 ‘기적’보다는, 전염병과 전쟁, 재난과 시스템 붕괴 같은 ‘느린 재앙’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성경은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시대의 진짜 주권자는 누구인가?
누구의 이름이 기억되고, 누구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우리는 그 표적을 보고도 눈을 감고 있는가?


결론 – 재앙은 심판이자 초대입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기쁨 속에서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는 외치신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확성기다.”


열 가지 재앙은 단지 파괴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집트(애굽)라는 제국 질서를 향한 도전이자 초대였으며, 장자의 죽음을 통해 피로 시작된 대속의 언약이었습니다. 그 피는 심판을 넘어가게 했고, 그 넘김은 구원의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스스로 주권자가 되려는 바로(파라오)가 될 것인가, 피로 구속된 백성이 될 것인가. 그 선택은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늘 우리를 초대합니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애굽기 9:1


한마디로,

“나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곧 ‘자유를 통한 예배로의 초대’이며, 그 초대 앞에서 우리는 매일 ‘누구의 소유로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존재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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