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홍해

– 마른땅, 그 경이와 의심 사이

by 이한

마른땅, 그 경이와 의심 사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 앞에 바다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뒤로는 이집트의 전차부대가 맹렬히 추격해오고 있었고, 앞으로는 넘실대는 홍해가 그들의 발목을 막고 있었습니다. 백성은 두려움에 휩싸여 모세를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 출애굽기 14장 11절


그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 출애굽기 14장 16절


그리고 바다는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마른땅을 걷습니다. 물은 그들의 좌우에서 벽이 되었고(출 14:22), 하나님의 바람은 밤새 바다를 가르며 새로운 길을 내셨습니다.


바다, 혼돈의 힘을 가르는 하나님의 행위

히브리 성경에서 바다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닙니다. 바다는 혼돈과 죽음, 무질서와 파괴의 상징이죠. 구약 전반에서 하나님은 바다를 다스리며 창조 질서를 세우는 분으로 등장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혼돈의 물을 나누며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시편 77편 19절은 말합니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출애굽기 14장의 홍해 사건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창조의 반복, 곧 새로운 백성의 출현을 의미합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이를 가리켜 "심판을 통한 구원의 드라마"라고 표현했죠. 혼돈의 바닷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논쟁되는 지점: 정말 바다가 갈라졌는가?

역사비평학은 종종 이 사건을 자연현상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어떤 이들은 '홍해'(Red Sea)가 아니라 '갈대 바다'(Reed Sea, 히브리어 "얌 수프")였다고 주장하며, 강풍이나 조수 간만 현상으로 바다가 일시적으로 갈라졌다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몇 가지 면에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지형적 조건: 전차 부대가 이동할 수 있을 만큼의 넓은 평지이자, 그들이 수장될 정도의 수심을 가진 지역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성경의 묘사: “물은 좌우에서 벽이 되었고”(출 14:22), “여호와께서 바닷가운데에서 애굽 사람들을 뒤흔드시매”(출 14:27)는 단순한 얕은 물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신학적 해석: 물리적 가능성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개입, 곧 초월적 주권입니다.


신약의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세례로 해석합니다.


“그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고린도전서 10장 1–2절


이것은 과거의 몸부림을 벗고 새 생명으로 나아가는 통과의례, 곧 신앙의 본질적 은유로 자리 잡습니다.


믿음, 마른땅 위에서도 의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바다를 마른땅처럼 걸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거기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바다를 건넌 후에도 그들은 반복해서 불평하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만나에 지쳐 하나님을 원망했죠. 이 사건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왜 믿지 못하는가?"


기적은 믿음의 조건이 아니라, 신앙의 출발선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훈련’ 속에서 성장해 가는 겁니다. 믿음은 해답을 가진 자의 태도가 아니라 해답이 없는 자리에서 붙드는 결정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오늘 우리는 ‘기술’, ‘정보’, ‘연결’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또 다른 바벨탑 안에 살고 있습니다. 데이터는 모든 것을 알고, 알고리즘은 미래를 예측하며, 인간은 이제 ‘신의 자리를 설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높아진 도시는 여전히 공허하고,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며, 영혼은 광야에 머뭅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묻습니다. “왜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내셨습니까?”


집을 떠난 믿음, 익숙함을 벗어난 불안, 이 모두는 출애굽의 반복입니다. 현대의 출애굽은 더 이상 지리적 이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존하던 시스템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신앙의 결단’입니다.

세상의 질서가 안전해 보일 때, 그곳에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늘 불안하고 불친절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이끌어냈고, 바다를 갈라 기억하게 하였다.”

믿음은 바다 저편이 아니라, 지금 넘실대는 물 앞에서 시작됩니다.


바다가 갈라진 이유

이스라엘은 바다를 마른땅처럼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자기 힘으로 만든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넘실대는 바다가 있습니다. 그 바다는 깊고 두렵고 끝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바람을 보내시고, 그분의 백성에게 마른땅을 열어 가르치십니다. 믿음은 바다가 갈라졌기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갈라지기 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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