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선물인가, 인간의 짐인가
시내산 위, 하늘은 불과 구름으로 덮였습니다.
나팔 소리가 울리고, 산 전체가 진동하며,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 출애굽기 20장 2절
율법은 노예 상태에 있는 자를 위한 조건부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해방된 백성에게 주어진 ‘함께 사는 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억압이 아니라 해방 이후의 질서였으며,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거룩한 공존의 문법이었습니다.
율법의 본래 의도 – 관계를 위한 언어
레위기 26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율법은 거리를 두기 위한 장벽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거하는 길잡이였습니다.
칼 바르트는 율법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주어진 인간의 자유의 형식”이라 불렀습니다.
즉, 율법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지, 구원을 사기 위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의 역할 – 죄를 드러내는 거울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0절에서 말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율법은 인간이 스스로 의롭게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율법을 “우리의 상처를 보여주되, 치료하지는 못하는 의사의 손”에 비유했습니다. 그 치료는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율법과 은혜 – 신약의 관점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태복음 5장 17절
그분은 율법의 조항을 넘어 율법이 지향하던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완성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율법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 불렀습니다.
율법은 인간을 그리스도의 필요성으로 이끄는 안내자입니다.
심리학적 시선 – 규율과 자유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은 자유를 주어도,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해 다시 권위와 규율 속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해방 이후에도 종종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책임을 요구하고, 책임은 불안을 낳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그 불안을 방황으로 흩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질서의 울타리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오늘날 신앙인에게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지만, 율법이 지향하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 삶의 방향입니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혜는 율법을 버리지 않는다. 은혜는 율법이 원하던 것을 사랑으로 이루게 한다. — 순전한 기독교
율법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관계의 언어이며, 그 끝은 언제나 은혜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