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침묵하셨는가
욥은 완전하고 정직한 자였습니다. 그의 삶은 의로웠고, 하나님도 그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재산과 자녀, 건강까지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벗은 몸으로 내가 모태에서 나왔사온즉 또한 벗은 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 욥기 1장 21절
욥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고난을 죄의 결과로 해석했지만, 욥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 논쟁 속에서 하나님은 오래도록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 해답이 아닌 신비
디트리히 본회퍼는 <옥중서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침묵하실 때조차도, 그 침묵 자체로 말씀하신다.
'침묵'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같이 인간의 가장 깊은 고난에 함께하시며 말씀하시는 방식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 관점에서 본회퍼의 명제는 논리적 모순이 아닌,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볼 때, 본회퍼의 명제는 고통과 부재(침묵)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존주의적 접근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무의미해 보이는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침묵은 그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도전이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본회퍼에게 하나님의 침묵은 인간에게 능동적인 신앙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신호였습니다. 하나님이 명확한 기적이나 음성으로 말씀하지 않을 때, 인간은 스스로의 양심과 이성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처럼 '침묵'은 인간의 윤리적 실천을 촉구하는 역설적 명령으로 기능합니다.
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질문에 논리적 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폭풍 가운데 임재하셔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 욥기 38장 3–4절
하나님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세상과 생명의 기초 위에 서 계신 자기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철학자들의 질문 – 고통과 의미
키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에서 신앙을 “부조리 속의 도약”이라 불렀습니다.
욥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합리적 설명이 부재하는 순간에도, 그는 끝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카프카는 <심판>에서 “인간은 답 없는 심문 앞에 서 있다”라고 묘사했는데, 욥의 상황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차이는 분명했습니다. 욥은 답을 얻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현존을 만났습니다.
신약에서 본 욥 –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
야고보서 5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의 고난은 단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한 믿음의 본보기로 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역시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은 세상에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 침묵의 하나님을 만나는 법
오늘 우리는 여전히 고통 앞에서 묻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의학과 과학이 발달했지만, 고통의 의미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입니다.
칼 바르트는 “신앙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붙드는 용기”라고 말했습니다.
욥의 신앙은 바로 그 질문 속에서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린 신앙이었습니다.
C.S. 루이스도 <고통의 문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 속에서는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는 말씀하시지만, 고통 속에서는 외치신다. 고통은 하나님의 확성기다." 이 말은 우리가 평안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살기 쉽지만, 고통 속에서는 그 고통이 마치 확성기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수단이 된다는 것일 겁니다.
결론 – 회복의 진정한 순간
욥은 결국 고난에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복은 그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다시 만난 순간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 욥기 42장 5절
고난의 끝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도 멀리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은 우리를 자신에게 더 깊이 이끄는 신비로운 언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