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
이승은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입니다
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데
근황이 어떻습니까, 아직 물속입니까?
굴절은 직진, 반사와 같이 학창 시절 배운 빛의 성질이지요. 우리 삶 또한 직진하고 반사되곤 합니다. 환경이 바뀌면 굴절이라는 양상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욕탕 탕 안에 들며 자주 접하던 굴절은 빛이 공기 중에서 물을 통과할 때 진행 방향이 꺾이는 현상인데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이 출발합니다.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이는 건 일종의 착시입니다. 그런데 중의성을 추구하는 시의 특성상 물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 당사자의 말을 바로 수긍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합니다. 상대가 화자를 안심시키거나 시선을 피하려 꺼낸 말일 수도 있으니까요. 화자는 이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는 듯 ‘아직 물속입니까?’ 하고 조심스레 근황을 되묻습니다.
아직도 물속이라면 그는 본래대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죠. 서두의 ‘물에 잠기는 순간’이 유혹에 빠지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물이 깊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더러 보곤 하지 않습니까. 반면 누군가를 위해 물속에 뛰어든 경우라면 또 어떨까요. 이렇듯 시는 읽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일 여지가 있습니다. 그게 시의 묘미이면서 우리 인생의 묘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