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 밀림에서 보낸 여정들
아프리카 서쪽에 위치한 나라, 코트디부아르.
어느 날, 이곳 밀림 깊은 곳에서 나는 초콜릿의 뿌리를 만났고,
또 다른 날에는 부족의 추장으로 누군가를 추대하는 전통 의식을 지켜보았다.
그날들의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카카오 나무를 직접 본 적 있으세요?”
안순구 박사의 이 질문에서 모든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는 수십 년간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해온 인물로,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렀다.
그의 안내로 우리는 아비장을 출발해 한참을 달려 밀림 속 마을로 향했다.
덜컹이는 산길을 지나자 차창 밖으로 푸른빛, 노란빛, 검붉은 카카오 열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초콜릿의 원료예요.”
박사의 말에 나는 감탄했다.
초콜릿은 익숙했지만, 그 원료인 카카오 열매는 처음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 주민들이 전통춤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부족장이 등장했고, 그의 곁에는 여섯 명의 여성이 나란히 서 있었다.
모두 그의 아내들이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씩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은 혼자 쉰다더군요.”
박사의 설명에 웃음이 나왔지만, 곧 이어진 사실은 씁쓸함을 안겼다.
이곳에서는 자녀 수가 곧 노동력을 의미했고,
교육은 일부 남자아이들에게만 허락된 현실이었다.
일곱 채의 작은 흙집, 여섯 부인과 한 채는 부족장의 집.
모든 가족이 카카오 수확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커피 열매가 붉게 익은 가지를 지나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아이들은 초콜릿을 먹어본 적이 있을까?’
한 달쯤 뒤, 또 한 번의 초대를 받았다.
이번에는 티아살레라는 마을에서 열리는 명예 추장 추대식이었다.
오랜 시간 의료 봉사를 이어온 안 박사 덕분에, 우리 대사관이 초청된 자리였다.
행사에 앞서 우리는 먼저 안순구 박사의 병원을 방문했다.
아비장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외관만 보면 그저 낡고 소박한 시골 병원에 불과했다.
페인트가 벗겨진 벽, 낮은 단층 건물. 그러나 그 속에는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현지 의료진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했고, 박사는 웃으며 병원을 안내했다.
“이 병원 외엔 갈 곳이 없어, 멀리서도 환자들이 찾아옵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우리 의료진은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죠.”
박사는 병실 하나하나를 돌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닭 한 마리를 들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와 아이를 치료해 달라는 어머니,
통역이 필요해 부족어를 아는 간호사를 급히 불러야 했던 사연,
그리고 끝내 환자를 살리지 못했지만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았던 순간들.
“이곳 사람들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삶의 일부로 여깁니다.”
그의 말은 나를 잠시 멈춰 서게 만들었다.
죽음을 피하려는 데 익숙한 우리는,
삶의 끝을 하나의 실패처럼 여겨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땅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움보다 수용으로 맞이하며,
그것마저 삶의 일부로 살아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병원은 단지 진료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존중과 믿음을 실천하는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박사와 의료진은 매일 생명과 마주하며, 치유를 넘어 인간애를 실현하고 있었다.
병원 방문을 마친 우리는 행사가 열리는 마을 공터로 향했다.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이미 축제의 열기가 가득했다.
주민들은 화려한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젬베와 톰톰의 리듬은 공기를 흔들고, 여인들은 바닥을 쿵쿵 울리며 발을 구르며 몸을 흔들었다.
행사의 주인공은 대사 부부였다.
우리는 안내자의 인도로 임시로 설치된 천막 아래로 자리를 잡았고,
잠시 후 마을의 원로들과 부족장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입장했다.
금빛 휘장을 두른 지팡이를 들고, 그는 마을의 권위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무대 중앙으로 두 명의 젊은 여성이 등장했다.
상반신은 드러낸 채 전통 치마만 두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다.
“이 두 분은 명예 추장으로 추대되는 대사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정적이 흘렀고, 곧 당혹이 스며들었다. 대사 부인의 표정이 굳어졌고,
우리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회자는 잠시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대사님께서 부인이 있으니, 이분들은 따라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다행히 모두가 웃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그러나 이 짧은 순간은 문화적 충격이기도 했다.
같은 지구,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지만 이렇게도 다른 전통과 관습이 존재한다는 사실.
박사는 이슬람과 토속신앙의 차이, 일부다처제가 이곳에서 어떻게 여겨지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였다. 과거 자신이 명예 추장으로 추대되었을때 여섯 명의 젊은 여성들이
‘상징적 신부’로 주어진 일화도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대사는 전통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마을에 재봉틀을 선물했다.
재봉틀은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위한 실용적 도구이다.
사람들은 박수로 응답했고, 축제는 다시 북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춤을 추며 그날을 기념했고, 우리는 문화의 경계를 넘는 환대를 경험했다.
카카오 마을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나, 나는 티아살레의 축제 속에 서 있었다.
두 장면은 너무도 달랐지만, 모두 이 땅의 진실한 얼굴이었다.
한쪽에서는 어린아이들이 학교 대신 농장으로 향하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북소리에 맞춰 삶을 찬미하는 춤이 이어지고 있었다.
두 세계를 가른 것은 시간 한 달이었지만, 내 마음에는 같은 질문이 남았다.
‘풍요란 무엇인가?’
달콤한 초콜릿 뒤의 노동, 명예 추장 앞의 전통,
그리고 소박한 병원에서 들려온 생명의 이야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들은 여전히 느리지만 묵직하게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