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야만 했던 거짓말, 그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김애란의 [이 중 하나는 거짓말]

by 강물

소설을 배우는 예비 작가들이 책을 필사하려고 가장 많이 선택하는 책이 김애란 작가의 소설이라고 한다. 주로 단편소설을 쓰는데, 13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제목을 보고는 ‘거짓말’을 주제로 한 소설이겠거니, 짐작했다. 물론 거짓말이 소설의 소재를 이룬다. 하지만 거짓말 뒤에 숨은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진실 속에 웅크리고 앉은 삶의 아픔과 말할 수 없는 비밀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 제목은 자기 소개 게임에서 비롯되었다. 학기 초에 반 아이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면서 자신에 관한 다섯 가지 진술을 말한다. 그런데 그 중 한 문장은 반드시 거짓을 담아야 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무슨 항목이 거짓인지를 가려내게 함으로, 서로를 알아가게 만드는 게임이다. 담임 교사가 이 자기 소개 게임을 활용함으로 아이들이 감추고자 하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이 소설의 발판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 아이들인 지우, 소리, 채운이다. 지우의 아버지는 오래 전 소식이 끊겼고, 엄마도 최근에 죽었다. 그래서 엄마의 애인인 아저씨 집에 살다가 독립하기 위해 공사판에 일하러 간다. 그는 엄마가 바닷가 방파제에서 실족사했다고 하는데, 뇌암에 걸린 걸 감추고 지내 온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자살한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는 도마뱀 용식이를 키우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고, 그림 까페에 웹툰을 올리면서 자기 마음을 표현한다.


여학생 소리도 2년 전 암 투병하던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빠랑 살고 있는데, 소리 역시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 같은 반 지우가 공사판에 일하러 가면서 도마뱀 용식이를 소리에게 부탁한다. 그녀의 비밀은 손을 잡으면 곧 죽을 사람이 흐릿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게 두려워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다 보니 결벽증이 있는, 까칠한 아이로 소문난다.

세 사람 중에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캐릭터가 오채운이라는 남자 아이다. 축구를 하다가그만 두고 학교에 전학 오면서 사촌 집에 임시 기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엄마는 교도소에 있고, 아빠는 얼마 전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술에 취해 칼을 휘두르는 아빠에게서 엄마를 보호하려다 자신이 칼로 아빠를 찌른 것이었다. 그는 아빠의 의식이 돌아올까 봐 두려워한다. 동시에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강아지 뭉치를 끌어 안고 마음을 달래고 있다.

이 세 아이는 그림이라는 매개로 서로를 알아간다. 지우는 웹툰을 통해 어느 날 밤 채운의 가정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목격담을 그림으로 올리고 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채운은 자기 이야기인 것을 눈치 채고 전전긍긍한다. 소리는 학교에서 지우가 낭송하는 자작시를 듣고 화답하는 마음으로 지우에게 그림을 그려 준다. 그리고 지우의 웹툰을 통해서 지우의 사정을 알게 된다. 지우가 맡긴 도마뱀 용식이를 그림 달력으로 그려서 지우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이 세 명은 만나서 구체적인 감정이나 삶의 고통을 깊이 나누지 않는다. 잠시 잠깐 대화를 한다 해도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겉돌 뿐이다. 그들이 그림을 통해서 소통하는 것은, 그림은 모든 걸 세밀하게 드러내지 않고, 어렴풋이 감지할 정도로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문체 역시 그림과 비슷하다. 작가는 스토리를 자세하게 설명하기보단 세 사람의 감정을 관찰한다. 마치 수묵화(水墨畵)가 집 한 채, 한 줄기 난초, 새 한 마리 정도로 마음의 정경을 묘사하듯, 주인공들의 마음이 지금 어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지를 느끼게 하는 데에 집중한다. 슬픈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데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게 만들기보다는 가슴속에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차근차근 고이게 만드는 필력이다.

이 세 아이의 공통점은 가정의 아픔이다. 어릴 적 자신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자상한 엄마가 자살했을 것이라는 상상은 지우의 마음을 둘 곳이 없게 한다. 소리 역시 엄마의 죽음이 슬픈 밀물로 철썩이고, 엄마를 돌보는 가운데 느낀 자신의 마음 때문에 죄스럽다. 채운에게 아버지를 찔렀다는 회한(悔恨),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평생 져야 할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야 할 가정이 이 아이들에겐 가슴 아픈 비밀을 안겨 주는 가시울타리가 되었다. 그 상실감과 죄책감과 증오심을 있는 그대로 다 말할 순 없으니까 잠깐의 거짓말을 선택한다. 그 거짓말로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고, 관계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거짓말은 악의적인 거짓말이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짓이다. 세상에서 버티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숨 쉬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온 몸으로 고통의 광풍을 맞으면서도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이들의 하얀 거짓말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으랴?

나도 어릴 적 엄마의 거짓말을 목격했다. 과부로 살면서 하던 사업마저 망하고 나니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빚을 일부 갚기로 한 날짜에 돈이 준비 안 되면 핑계를 대면서 날짜를 늦출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결국 빚쟁이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돈을 제 때에 갚으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돈을 못 갚으면 거짓말쟁이로 욕을 먹어야 한다. 덩달아서 어린 나도 점차 거짓말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없이 나 혼자 집에 있게 되면 나도 엄마가 시킨 말을 앵무새처럼 읊어야 한다. 그래야 엄마랑 동생들이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존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랑 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비밀 유지에 동참하는 가슴앓이를 하게 되었다. 지금 다시 그 시절을 되짚으면 마음에 무거운 돌덩어리가 한없이 짓누르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더 크게 놀란 비밀이 있었다. 몇 살 터울 형이 있었는데 가족과 떨어져서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거의 만나질 못했다. 왜 형이라면서 가족들과 같이 살지 않고 혼자 유학 생활하고 있을까, 의아했다.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배다른 형이었다. 처녀였던 어머니가 어린 아들 하나 있는 아버지랑 결혼을 선택한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형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형의 어머니는 살아계셨고, 형은 고등학교 때 그 사실을 알고 생모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당시 사춘기였던 형이 받았을 충격과 슬픔, 그리고 자괴감을 상상하니 가슴이 진하게 아려 왔다. 자라면서 어머니가 내 어머니가 아니라는 놀라움, 내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라는 궁금증, 내 인생엔 왜 이런 시련이 왔을까? 라는 혼란과 절규로 몸서리쳤을 형의 고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내 가슴에도 창문을 때리는 비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염려해서 거짓말로 둘러댄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가정의 부끄러운 일이나 신체의 약점이나 경제적인 곤란 등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전부를 말하지 못한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거짓말로 자신의 삶을 포장하기 일쑤이다. 진실을 말하고 나서 감내해야 할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공동체에서 소외될까 봐 염려되기도 한다. 나 자신은 그대로지만 나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해석들은 뒤틀릴 수 있다. 그래서 점점 어두컴컴한 방 안에 틀어 박혀 자신을 숨기면서 진실을 감추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왜 거짓말을 하나? 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지 않나? 라고 비난할 수 없다. 진실을 당장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으니 그런 것이다. 그 사연을 드러내자면 곪아가는 상처가 다시 터지는 고통을 또 겪어야 한다. 그 아픔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다.


내가 어릴 때부터 애송했던 성경 구절 중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는 말씀이 있다. 내가 결손가정이라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면서, 가난을 겪으면서, 우리 집안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비밀들을 알아가면서 한 가지 장착하게 된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해심’이다. 나에게도 말 못 할 사연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있는 법이다. 우리 가정에도 아픔이 있다면 다른 가정도 눈물 나는 사건 하나씩은 다 있다. 나도 거짓말로 감추고 싶은 약점이 있다면 남들도 숨기고 싶은 수치를 안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고, 보듬으려고 하고, 연민의 눈으로 보려고 애써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다 연약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와 같다. 소설 속에서 지우가 어릴 때 들은 동화를 개작한 글처럼 ‘인간은 있되, 구원도 없고, 기적도 없고, 선의도 없는 세상’이기에. 이렇게 ‘비정하고 예측 못할 일 투성이’인 세상에서 고투하는 괴로운 사람들끼리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김애란 작가도 소설을 끝내면서 남긴 말에 이렇게 썼다. “삶은 가차 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흉터는 아픔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내가 그 고통을 극복했다는 무용담이기도 하다. 흉터를 만지면서 한때 아팠던 이야기를 할 날이 먼 훗날 올 것이다. 아플 때는 위로의 말도 귀에 안 들릴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아플 때 나에게 다가와 주었던 정다운 사람들의 존재가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만든 버팀목이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나무의 마디처럼 내 인생을 훌쩍 키운 디딤돌이었다. 상처(scar)가 별(star)이 되듯이, 고통의 속살이 진주로 영글듯이, 아팠던 기억은 서로 엮어져서 이야기라는 직물로 남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한 사람이 내면에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도, 지우와 소리와 채운의 이야기도, 혼자서 고통을 삭이고 있는 어떤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이야기로 들려지기를 두 손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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