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경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그 소설은 친근감이 든다. [비구름이 모일 때]가 바로 그런 소설이다. 우리 가족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4년간 살았기에 남아공 출신의 작가 베시 헤드가 쓴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마음 깊이 파고 들었다.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남아공 바로 위에 있는 나라 보츠와나의 한 마을이다. 시간적 배경은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고 있던 1960년대이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라는 뜻이다. 남아공에서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시행된 인종차별과 인종 분리 정책을 의미한다.
나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남아공에서 살았다. 이미 흑인 정권이 들어선 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흑인들 대다수는 그 이전부터 살고 있던 흑인 전용 거주 지역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 백인들이 주로 사는 타운하우스에 살던 나는 가끔 선교사들을 따라서 흑인 거주 마을을 방문했다. 찌그러진 양철로 만든 좁은 오두막에서 허름한 옷을 걸친 채 옥수수죽을 떠먹는 흑인 아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짠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한국에서 잠시 다니러 온 선교팀 중 한 사람이 신고 갔던 운동화를 벗어서 한 아이에게 주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발을 신어 본다면서 기뻐서 뛰던 흑인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다.
20세기 가장 잔인하게 이루어진 흑인 박해에 대항해서 저항 운동을 하던 주인공 마카야는 국경을 넘어 보츠와나로 탈출한다. 난민 신세로 ‘골레마음미디’ 마을에 정착한 마카야는 거기서 마음이 너그러운 벗들을 만난다. ‘태양빛이 사라진 닫힌 세계, 불신과 증오로 가득한 세계’인 남아공과 결별한 마카야는 이국 땅 시골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과 선의 세계를 맛 본 것이다. ‘디노레고’ 노인과 그의 딸 ‘마리아’가 그의 정착을 도왔고, 경찰관 ‘조지 애플비스미스’는 반정부 투쟁 전력을 가진 마카야를 법적으로 보호해주었다.
마카야는 조지 애플비스미스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도 나는 당신을 위해 모험을 해보겠소”. 만약 마카야가 사고를 친다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공무원 신분인데도 마카야를 위해 희생을 불사하는 그의 진심이 마카야의 마음 빗장을 열었다. 또한 영국사람으로서 빈곤에 시달리는 보츠와나 시골 마을의 경제개발을 위해 발 벗고 헌신하는 ‘길버트 밸푸어’의 모습에서, 함께 힘을 모으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보았다.
소설 속에서 마카야에게 가장 깊은 감화를 준 사람은 ‘’음마밀리페디‘라는 늙은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자기 삶을 지배해온 증오심의 고통을 털어놓는다. 남아공에서 백인들은 흑인들을 ‘검은 개’라고 불렀다. 검은 개와 같은 흑인들을 때릴 때 울부짖고 두려워하는 흑인들의 모습을 보고 꺄르르 웃으면서 박수치며 즐거워했다. 그런 백인들을 향한 증오심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었고, 사람 자체에 대한 애정이나 기대감도 버린 지 오래였다. 증오는 폭력을 낳고, 그 폭력은 다시 증오를 생산한다.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사람도, 그 사람을 향해 복수의 칼을 겨누는 사람도 결국 야수의 얼굴로 변하게 된다. 악을 응징하려고 일어섰던 사람이, 나중에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더 악한 짓도 저지르는 것을 본다. “미워하면서 닮아 간다”는 옛 속담이 한 치도 그르지 않음을 현실에서 종종 깨닫는다.
‘미친 개’라고 모욕받던 세월 때문에 수치심과 분노로 치를 떠는 마카야에게 그녀는 사람에 대한 연민의 가치를 되살려준다. 평화의 길을 찾아 헤매는 마카야가 잃어버린 것, 그것은 결국 ‘지구에 사는 사람 하나하나가 다 형제’라는 생각이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는 것이 인생이지만, 동시에 그 상처를 치료하는 통로도 사람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악한 인간이든, 선한 인간이든 아직 삶의 신비에 닿지 못해서 미성숙하고 무력한 상태일 뿐이라고 이해하는 시선! 모든 사람을 내 형제라며 너그럽게 안아주는 태도! 그 너그러운 마음이 증오심과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실마리가 될 거라는 이치를 풀어놓는다.
‘마리아’도 마카야에게 이런 말을 한다.
“땅에서는 강물이 안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안에는 강물이 있어요. 그래서 좋은 것들과 좋은 사람들을 ‘비’(rain)라고 하는 거예요. 때때로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가도 비구름이 모이죠. 모든 게 우리 마음속에 있어요”.
연평균 강수량 450 밀리미터의 황량한 땅에 사는 그들에게 비는 최고의 행복이요, 가장 큰 선물이다. 그 비는 하늘에서 내리지만, 땅에 있는 좋은 사람들도 역시 비와 같은 축복의 선물일 수 있다. 이 땅에는 메마른 대지와 가시덤불 같은 사람도 있지만, 한편 강물같이 생명을 나누어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척박한 땅, 고통 많은 삶이지만 비 같은 사람, 강물 같은 온정이 있기에 이 땅은 살맛 나는 세상으로 진보해가는 것 아닐까? 마카야도 점점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음마밀리페디와 마리아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마음의 평화를 회복하는 길도,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도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있음을.
나는 마카야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 여인 음마밀리페디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보았다. 그녀가 어떤 얼굴일까 생각하다가 남아공 모든 관공서와 중요 건물에 다 걸려 있던 사진 한 장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환하게 웃고 있는 ‘넬슨 만델라’의 얼굴이었다. 사람 좋은 표정으로 밝게 미소 짓는 만델라의 표정과 유사한 얼굴이 바로 음마밀리페디의 얼굴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남아공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이름도, 가장 자주 사진을 볼 수 있는 사람도 넬슨 만델라이다. 세계적으로도 20세기의 존경받는 위인이지만 특히 현대 남아공 역사는 넬슨 만델라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한 무장투쟁때문에 수감되었다가 27년만인 1990년, 감옥에서 나온다. 백인 정권의 마지막 대통령 F. W. 데 클레르크와 손 잡고 아파르트헤이트를 공식 폐지함으로 함께 199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1994년에 최초의 흑인 출신 대통령에 당선된다.
만델라는 46년간 흑인들을 탄압해온 백인들이 한 짓에 대해 보복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모든 사람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이상’을 품었다고 한다. 이런 평화로운 세상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가 미래를 가두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믿었다. “용서는 영혼을 해방시키고, 두려움을 없앤다”고 만델라는 말했다. 만델라는 모두가 함께 증오를 버리고 사랑을 배우자고 호소했다. “사람은 처음부터 증오하지 않습니다. 증오는 살면서 배운 것입니다. 사람이 증오를 배울 수 있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증오보다 훨씬 더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만델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최초 본성이 선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과 용서만이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나서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길임을 확신했다. 만델라가 내민 용서의 손짓이 놀라운 점은 그가 백인 정권에 의해서 27년간 옥고를 치렀다는 사실에 있다. 가장 큰 박해를 경험했던 그가 선택한 길이 용서와 화해였기에 세계는 놀랐고,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만델라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작가 베시 헤드에게서도 놀라움과 감동을 받는다. 그녀는 1937년 남아공에서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어머니마저 정신병원에서 그녀를 낳았기에 곧바로 입양되었다. 그녀는 14살 때 자신이 입양아인 걸 알게 된다. 예민한 사춘기 때 받은 그 충격은 일생 그녀를 우울증과 정신 분열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만든다. 그녀는 아파르트헤이트 상황에 염증을 느껴 보츠와나로 떠나서 난민 신세가 된다. 15년간 국적 없는 난민으로 지내다가 30살 때 쓴 이 소설을 발판으로 삼아 나중에 보츠와나의 시민권을 취득한다. 사실상 소설 속의 주인공 마카야의 모습은 그녀의 삶을 투영한 것이나 다름없다.
흑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에서 혼혈아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었던 베시 헤드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그렇게 버림받음과 차별과 억압을 겪으며 살았던 작가가 너그러운 사랑과 사람에 대한 용납을 주제로 소설을 썼다는 점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른다. 차별과 폭력의 시스템을 맹렬히 비판하거나,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려 하지 않고, 유토피아적인 이상과 낭만적인 사랑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베시 헤드에게 진심 어린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녀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저 위에 가고 싶다, 나는 별들에 이르는 계단을 만들고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베시 헤드는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는 시대의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별을 바라보며 별을 노래하며 별에 이르려는 아름다운 꿈을 결코 잃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해서 암송했던 성경의 장이 로마서 12장이었다. 로마서 12장 9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 분명히 악은 용인되어선 안 된다. 악은 미워해야 하고 악은 척결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을 증오하다가 악과 동화되어선 안 된다. 악을 몰아내는 길은 선의 방식이어야 한다. 최선의 선이란 사랑으로 손 내미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연민을 품는 것이며, 원수일지라도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하는 태도이며,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그가 행한 악을 미워하는 태도이다. 악한 행동은 미워하되, 그 사람만은 끝까지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기약할 수 있다. 어쩌면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는 건 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꿈을 잃는다는 것은 더 큰 상실이다.
이 소설은 나를 향해, 이 시대를 향해, 늘상 우리를 괴롭히는 악과 맞서 싸워 이기는 무기는 바로 선, 선 그 자체인 사랑이라고 속삭인다. 성경에서도 결국은 악이 패배하고 사랑의 나라가 승리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전히 악이 주름잡는 것 같고, 악한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은 이 시대지만 나는 그래도 끝까지 이 진리를 붙잡고 살아갈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마카야와 길버트처럼, 넬슨 만델라처럼, 작가 베시 헤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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