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팔 수 있는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by 강물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중국의 허삼관이라는 사람이 피를 파는 이야기이다. 중국의 작가 위화가 194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의 중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1949년 공산주의의 시작부터 1959년부터 1961년까지의 대기근, 그리고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시대의 극심한 가난과 정치적 공포 분위기를 배경으로 피를 팔아서라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는 스토리이다. 2015년 <허삼관>이라는 제목으로 하정우, 하지원 주연의 우리나라 영화로도 각색된 적 있다.


허삼관 매혈기.jpg

주인공 허삼관은 날실 공장의 평범한 노동자이다. 허옥란이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여 일락, 이락, 삼락 세 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맏아들 일락이가 자라면서 점점 더 다른 남자의 얼굴을 닮아간다. 허삼관의 의심이 깊어가고, 그에 따라 친자 확인 소동이 벌어진다. 한동안 맏아들과 아내를 구박하던 허삼관은 한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부자 관계의 애정을 회복한다.


허삼관은 결혼 전 총각 때 피를 처음 판다. 피를 한번 뽑으면 그 당시 돈으로 35위안을 받았다. 그 금액은 당시 노동자들의 한 달 품삯 정도였으나 물가를 감안하면 체감 금액은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눈 딱 감고 몸을 희생해서 목돈을 손에 쥔다는 마음으로 피를 판 것이다. 그 이후 큰 아들이 친 사고의 수습을 위해, 한 여인과의 불륜 행각 뒤처리를 위해, 대기근을 겪으면서, 그리고 마지막엔 중병에 걸린 큰 아들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목숨을 걸고 피를 뽑는다.


이 소설의 미덕은 비극적인 스토리에 희극적인 색깔을 덧입힌 점에 있다. 허삼관이 허옥란을 아내로 얻기 위해 담판을 짓는 모습, 피를 팔고 나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식당에 가서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주문하는 모습, 친 아들 소동으로 인한 하소용 집안과의 싸움, 임분방과의 불륜으로 인한 싸움 등 사건마다 오고 가는 말들 가운데서 우스운 표현들이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친 아들 소동 자체 속에 유머러스한 측면이 내재 되어 있다. 대기근으로 인한 배고픔의 고통을 참는 과정이나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가족들끼리 비판 대회를 하는 광경 가운데서도 작가는 코믹한 요소들을 삽입해 놓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가장 비인간적인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들의 말 속에 해학과 풍자와 상상력이 실려 있기에 어떤 면에선 역설적으로 독자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아픔과 슬픔을 더 가슴 아프게 느끼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위화는 인물들의 간결한 대화와 더불어 시적인 언어 리듬과 반복법을 구사하여 글 읽는 맛을 살린다. 마치 타령조 같은 문체 덕분에 더더욱 인물들의 감정이 마음을 파고들어 허삼관을 중심으로 한판 흐드러지게 벌어지는 마당극 현장에 서 있는 듯 하다.


소설의 주인공 허삼관은 별로 매력적인 인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짜증과 분노를 유발할 때가 더 많다. 큰 아들이 친 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부터 어린 아이에게 할 말 못 할 말 다 쏟아내면서 모진 상처를 주는 장면을 보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아내를 구박할 때도 참 치졸한 남자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아내가 겪은 상처를 자주 입에 올리면서 자녀들 앞에서도 망신을 주는 모습을 보노라면 비겁하고 속이 좁다는 생각도 든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속으로 그런 말이 울컥 솟구쳤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품고 있던 큰 아들에 대한 부성애를 각성하고 표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허삼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조금씩 걷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피를 파는 가장으로서의 분투, 큰 아들을 살리고자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나방처럼 피를 파는 병원으로 달려가는 그의 모습에서는 진정한 남자의 면모를 발견하고 존경의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허삼관은 단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소설을 덮으면서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완전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피를 팔기 위해 병원으로 걸어가는 허삼관의 모습을 읽노라니 나의 중학교 시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부이신 어머니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집안이 말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어머니가 중병으로 수술을 하시고 몇 달 동안 누워 계셨다. 나는 학교에 점심 도시락을 못 싸 가기도 하고, 수학여행 가는 것도 포기해야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14인치 텔레비전을 어깨로 이고 전당포에 몇 번 갔던 일이다. 중학생이라지만 몸집이 작았던 나로선 텔레비전을 전당포까지 갖고 가는 것이 힘이 들어서 걸어가다가 몇 번이고 쉬어야 했다. 더 민망한 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었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두리번거리면서 발걸음에 속도를 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로선 집에서 값을 쳐 주는 물건이라야 텔레비전 한 대 밖에 없었기에 텔레비전을 며칠 간 맡기고 돈을 빌리는 길 외엔 급한 돈을 구할 길이 없었다. 결국 중학교 시절 어느 때엔 집 안 모든 가구에 딱지가 붙기도 했다.


불우한 시대에 가족들을 지켜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허삼관의 책임감을 보면서 몇 년 전 겪은 실직의 경험도 오버랩되었다. 결혼하고 나서 가장으로서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시기는 탈진이 와서 일을 그만 둔 이후였다. 다음 임지를 안 정한 채로 사직해서 7개월간 실업자 신세로 지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허삼관이 매혈소로 향하듯,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채용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가장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보려 했다. 하지만 50대 남자, 그것도 다른 일을 전혀 해 보지 않는 무경력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지원 가능한 직종이라곤 독서실 야간 근무 혹은 공장이나 사무실의 야간 경비 정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도 워낙 경쟁률이 높아서인지 지원해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명색이 가장인데 돈버는 일을 못하고 있으니 아내 보기에 매일 미안했고, 하루 하루 달력이 넘어가는 것이 무척 두려웠다.


허삼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연 피를 팔아서 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가족들을 위해서 피를 팔러 나갔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봤다. 가끔 공용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문에 장기매매에 관한 광고가 붙어 있다. 가정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거나, 가족이 중병이 들어서 큰 돈이 필요한데 수중에 아무 것도 없을 때면 나도 이런 선택을 고민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가장이라는 책임은 실로 막중한 것이다. 나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의 눈망울을 떠올린다면, 못할 것이 없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피를 팔아서라도 가족을 지키려는 허삼관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훌륭한 가장이고, 남자이다. 나는 가족들을 위해서 귀한 것을 팔아 본 적이 있는가? 내 몸이 부서지도록 무리한 희생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생계비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질문해보면서, 허삼관은 참 듬직한 가장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결국 가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떼어내는 이야기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상징하는 피 한 방울, 그 피를 팔아서라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그런 의지를 품은 것만으로도 허삼관은 멋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허삼관이 뽑은 피는 가장의 무게이자 사랑의 다른 얼굴로 느껴진다. 자기 피를 흘려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서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살린다면, 그보다 더 숭고한 사랑은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랑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림으로, 인류를 죄와 죽음의 수렁에서 건져내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허삼관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분명히 차원이 다르다. 허삼관의 피는 한 가정의 생계를 위해 반복적으로 뽑은 피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단 한 번으로 인류 구원을 이룬 피였다. 하지만 허삼관이 팔려고 내놓은 피가 가족을 살렸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피는 인류를 살리는 생명의 희생이었다. 이 소설은 상상 속 주인공인 허삼관의 매혈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 속 인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곱씹게 해 준다는 점에서 나의 가슴에 오래 남을 소설이 될 것 같다.


#허삼관매혈기 #소설읽기 #소설추천 #중국소설 #소설독서 #소설독후감 #소설독서에세이 #소설감상문 #소설후기 #소설리뷰

이전 03화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들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