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우리를 아프게 하는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

by 강물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는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알쏭달쏭했다. 사람 이름인지, 나무 이름인지, 동네 이름인지 감이 안 왔다. 책을 읽어 가면서도 혼란이 왔다. 장편 소설이라고 들었는데 목차도 그렇고 읽다 보면 단편 소설 모음집인가 싶은 의문도 생긴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부분들도 가끔 있어서 더 알쏭달쏭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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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배경은 미국의 북동부 맨 위에 위치한 ‘메인 주’의 ‘크로스비’라는 바닷가 작은 마을이다. 젊었을 때 학교 수학 교사를 지낸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여인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주인공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을 비롯해서 그의 동네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13편의 이야기마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등장하지만, 그냥 스치고 지나갈 때도 있고, 그녀가 주축인 스토리도 있다. 한 가정을 메인으로 설정하되 동네 사람들을 골고루 비추는 주말 드라마와 비슷한 느낌이다. 주말 드라마에는 내 이웃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이 버무려져 있다. 이 소설 역시 바로 내 옆집에 살고 있는듯한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누구나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평범한 이야기들 속에 가슴 짠한 페이소스(Pathos)가 담겨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눈가에 눈시울이 적셔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 한 켠이 아리는 이유는 머리 속에 ‘외로움’과 ‘상처’라는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서 외로움과 상처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외로워서 마음의 공허함을 느끼고, 외로워서 사랑을 갈구하고, 외로워서 정서적인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눈물로 가득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많고, 자살하는 이야기도 많고, 불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유는 결국 외로움을 스스로 치유하지 못해서이다. 모든 고통의 뿌리에는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남편 ‘헨리’는 동네 약국을 운영한다. 아내와 평생 별 탈 없이 살아 왔지만 어느 순간 약국 점원으로 일하는 젊은 여인 ‘데니즈’에게 연정을 느낀다. 아내에게 고백하지는 못하고 마음으로만 담고 만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내 올리브 역시 같은 학교 교사인 ‘짐 오케이시’와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 부부 사이에 큰 문제점은 없는 것 같은데, 왜 그 부부는 각자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느꼈을까? “두 사람의 내면은 서로에게 부비대고 있었다”라는 표현에 눈길이 머문다. 한 집에 같이 사는 것과 마음으로 서로에게 부비대는 관계는 다를 수 있다.


사람은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부비대고 싶은 법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부비대는 관계를 갈망한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집에 키우는 개 ‘레오’도 가까이 다가와서 자기 몸을 나에게 부비댄다. 그냥 부비대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몸으로 밀어붙인다. 얼굴을 쓰다듬어주면 기분이 좋아서 그르렁거린다. 개도 사랑의 스킨십을 갈구한다면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내 마음에 쉼을 주는 따스한 정서적 교감, 이것이 사람에게 필요한 마음의 양식이다. 소설속에 나오는 표현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사람에게 사랑이 절실하다는 점을 책 속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말로 묘사한다. “인간은 사랑하지 않으면 병이 난다”. 혈관에서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하면 병이 나듯이, 인간의 마음엔 사랑이 흘러야 하는데, 사랑의 길이 막히면 결국 어디선가 터지게 된다. 사랑에 목이 마르면서도 사랑의 두려움에 떨던 ‘니나’라는 아가씨는 거식증(拒食症)이라는 병에 걸리고 만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받지 못한 사람은 거식증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결국 니나는 사랑에 굶주렸던 것이고, 그것은 니나만이 아니라 젊은 정신과 의사 ‘케빈 코울슨’도 마찬가지였다. 케빈은 자살하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가 학교 때의 은사 올리브랑 대화를 나누게 된다. 올리브랑 대화하다가 급히 달려나간다.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진 옛 친구 ‘패티 하우’를 건지러 바다에 뛰어든다. 패티 하우는 죽을 힘을 다해 케빈을 붙잡는다. 케빈은 이 순간이 영원하길 갈망한다. 그녀가 죽고 싶지 않은 것처럼 사실은 케빈도 죽고 싶지 않다. 어머니가 자살한 사람은 자녀도 자살할 확률이 높지만, 어머니를 일찍 잃은 케빈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의 자살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오”라는 존 베리먼(John Berryman)의 싯귀가 흐르고 있다. 포근한 가정의 온기를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한 케빈의 스산한 감정이 바닷가에 세차게 부는 바람처럼 애잔하다.


올리브의 아버지도 권총으로 자살을 했었다.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토퍼’ 역시 “가끔 모든 걸 끝내버리는 생각을 해요”라고 말한다. 어릴 때 목회자의 딸로 태어난 ‘레베카 브라운’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리고, 젊어서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있다. 그녀는 끊임없는 도벽(盜癖)에서 탈피하질 못하고 마침내는 더 큰 사고를 치고 만다. 사랑의 허기(虛飢)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생을 놓아버리게 만든다. 몸 파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피아노 연주자 ‘앤절라 오미라’는 가정에서의 상처가 피아노 연주에 몰입하게 이끌었다. 그녀의 손은 늘 배가 고팠다. 하지만 실상은 그녀의 마음이 배가 고팠던 것이다.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피아노 건반으로 달랜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결핍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충분히 해갈되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데, 그 종이가 사랑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리브의 친구 ‘버니’는 남편이랑 썩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늙어서 남편이 살아있는 것이 복권에 당첨된 것 같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이 외로워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날마다 보기 때문이다. 올리브가 남편 헨리를 요양원에 보내고 혼자 적적할 무렵,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 ‘잭 케니슨’을 우연히 만난다. 그 남자가 말한다. “아내가 12월에 죽었어요”. 그러자 올리브가 묻는다. “그럼, 댁도 지옥이겠구려?”. 사랑하는 사람 없이 홀로 남겨진 그 상태가 바로 지옥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을 이해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 뜻을 조금은 이해한다.


나의 어머니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 서른에 과부가 된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종종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뒷방에 아파서 누워 있어도 좋으니 남편이 있으면 좋겠다”. 물론 어릴 땐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을 좀 살아보니 이해가 되는 말이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의견 차이로 옥신각신하기도 하고, 가끔 아웅다웅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혼자 남는 것보단 백배 천배 낫다는 말이다. 싸울 사람이라도 있는 것이, 아무도 없이 썰렁한 방보단 훨씬 낫다는 말이다. 소설 속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서로를 빼면 그들에겐 아무 것도 없기에. 이마저도 없다면 그들은 어쩐단 말인가?”. 사람의 주성분은 사랑이고,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온전할 수 없기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세기 2:18).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내 옆에 살아서 존재하는 아내가 소중하게 여겨진다. 나도 헨리가 아내 올리브에게 물었던 것처럼 속으로 아내에게 질문해본다. “당신, 날 떠나지 않을거지, 그렇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가끔 나에게 “있을 때 잘해”라고 말한다. 그래, 있을 때 잘 해야 할텐데... 소설 속에서도 찔리는 표현이 있다.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지금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그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그리고 젊을 때나 늙었을 때나, 죽기 전까지도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소설 속에서 시카고 의대 총장이 졸업식 강연 때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길든지 짧든지 간에, 지금보다 더 사랑을 나누어주고, 더 사랑을 받기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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