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왜 정답이 없는 시험지와 같을까?

-양귀자의 [모순]

by 강물

양귀자의 소설 [모순]은 무척 궁금했던 책이었다. 출간된 지 30년이 가까운데도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비결이 뭘까, 호기심이 있었다. 이 소설만큼 꾸준히 잘 팔리면서 SNS에 자주 오르내리는 한국 현대소설도 드물기에 한번 읽어봐야지 싶었다.

읽어보니 요즘 나오는 난해한 소설들과는 달리 이 소설은 술술 단숨에 읽히는 간결한 문체와 선명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유도하는 소설이라는 점이 큰 미덕이다. 사람들이 대체로 선호하는 사랑 이야기를 큰 축으로 깔고 있어서 인생 성찰이라는 무게감과 아울러 달달한 느낌도 섞여 있어서 밸런스가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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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안진진이라는 25살의 휴학중인 여대생이다. 안진진은 나영규라는 남자랑 김장우라는 남자를 놓고 누구랑 결혼할 것인가, 저울질 중이다. 나용규는 시계 같은 남자이다. 모든 스케줄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짜릿한 낭만은 없지만 안정감은 최고인 남자이다. 김장우는 야생화 같은 사람이다. 야생화를 사진 찍는 사진 예술가. 경제적으로는 불투명할 수 있지만 몽상이라는 멋이 있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랑 결혼하느냐에 따라서 안진진의 미래 색깔은 달라질 것이다.


안진진이 결혼대상자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와 이모의 인생에 대한 관찰 때문이다. 어머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조건 안에서 같은 양육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그 둘은 결혼을 기점으로 하늘과 땅 만큼 다른 인생을 꾸민다. 돈 잘 버는 건축가에다 가정적이면서 시계처럼 매사에 한 치도 실수 없는 남편을 만난 이모는 걱정할 일 하나도 없는 인생을 산다.


하지만 안진진의 아버지는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한량 같은 사람이다. 점차로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다가 마침내는 몇 년에 한 번 잠시 집에 들를 뿐이다. 가정 생계는 오로지 엄마의 몫이다. 안진진의 엄마는 가장인 남편 몫까지 감당하느라 매일 전쟁 같은 삶의 연속이다. 불쑥 불쑥 사고를 치는 안진진의 남동생 뒤치다꺼리까지 하느라 엄마는 여유가 없는 나날을 산다.

똑같은 조건에서 태어난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행복이 차고 넘치는 인생을 살고, 또 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불행을 다 가진 사람처럼 사는 모습, 이 지독한 모순이 이 소설의 화두이다. 인생은 왜 이토록 모순적인가? 도대체 무엇이 인생을 결정하는가? 인생은 탐구해야 하는 것인가,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인가? 인생은 운명인가, 선택인가? 행복을 선택한다면 정말 행복이 오는가, 불행을 피하려고 애쓰면 정말 불행은 피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인생살이 가운데 문득 문득 솟구치는 질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눈 떠서부터 눈 감을 때까지 그냥 사는 사람보다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뇌하면서 사는 사람이 인생에서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획득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이모의 고민에서 더 복잡하고 깊어진다. 이 세상 누가 봐도 이모의 삶은 평탄하고 행복할 것이라 여겨졌다. 안진진의 어머니와 비교해보면 이모는 행복을 독차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반전이다. 이모는 너무나도 평탄해서 결핍이 하나도 없는 자신의 인생을 ‘지리멸렬한 삶’이라고 묘사한다. 자신의 지나온 삶이 무척 지루했다고 고백한다. 무덤 속 같은 평온 말고 오히려 전쟁터 같이, 남들이 사는 것처럼 치열하게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남들이 볼 때 안정감 있고 유복하다고 느껴진 삶이 이모에겐 단조롭고 재미없는 삶이었다. 낭만을 추구하던 이모에게 있어서 낭만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자동판매기처럼 오차 없이 모든 것이 눈 앞에 차려진 인생은 허무였던 것이다.


그와 반대로 식구들 먹이고 살리기 위해서 하루도 쉴 틈 없이 돈 벌기에 바빴던 안진진의 엄마는 비록 고단한 매일을 살긴 했지만 ‘활력있는 인생’이었다.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눈물 나지만 그래서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뜨거운 몸부림이 있었다. 허무니, 고단이니, 낙심이니, 재미니, 그런 단어는 어머니에겐 사치였고, 날마다 버티고 이겨서 마침내 생존해내야 하는 과업으로 가득찼다.


과연 누구의 삶이 행복했을까? 남들이 행복할 거라고 상상했던 이모는 과연 행복했던가?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불행하다고 여겼던 어머니의 인생은 과연 실패작이었을까? 이런 모순 앞에서 안진진의 남자 선택 또한 영향을 받는다. 현실인가, 몽상인가? 안정감인가, 낭만인가? 걱정 없는 인생인가, 재미있는 인생인가? 안진진은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완벽하게 행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생길에서 어떤 발걸음을 내딛을 것인가? 이런 궁금증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인생을 반추해보았다. 인생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만 한번 가정을 해보자, 싶었다. 나는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시골교회 목회자였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어린 시절이었다. 만약에 나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 계셨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본다. 계속 시골교회에서 목회하셨을지, 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도시교회로 이동하셔서 사역하셨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아버지가 없는 상태보다는 경제적으로 덜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서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을 것이다. 인생은 자질구레한 선택들이 모여서 한 덩어리로 열매 맺는 것인데, 아버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는 차이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 내가 아버지 없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엇을 얻었던가, 자문해본다. 아버지가 없어서 잃은 것들도 많지만, 얻은 것들도 작지 않다. 무엇보다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 잡초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온실 속의 화초들을 보면 지금도 안 부러운 건 아니다. 모든 여건이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부모의 돌봄과 안내를 받으면서, 때론 경제적인 지원까지 받으면서, 고속도로를 편하게 주행하는 사람들이 가끔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혜택보다 더 큰 보물이 나에게 있음을 알고 있다.


어릴 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전기를 탐독했다. 우장춘 박사는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지냈다. 아버지때문에 '조센징'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 때 일본인 어머니가 어린 우장춘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민들레는 밟히면서도 핀다”. 이 말이 우장춘을 버티게 한 경구(警句)였다. 밟히면서도 끝끝내 굴하지 않고 피어나는 용기, 이것이 인생을 끝까지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어떤 고난과 실패가 있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끈기와 질퍽한 환경에 대한 적응력, 이것은 돈으로나 교육으로 얻을 수 없는 자산이다.

나는 온실에서 자란 화초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야생초의 투박한 참을성을 터득했다. 거친 광야를 달리는 고독한 인생이었지만, 광야 가운데서 만나는 바람과 안개와 들풀들에서만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배웠다. 남들이 가진 것은 못 가졌지만 그 대신 남들이 갖지 않은 것을 가졌기에 한 번도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겉으로 행복하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요, 외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내적으로 행복한 사람일 수 있는 법이다. 행복은 환경이나 소유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면세계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다. 내 마음이 행복하면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 것이며, 내 마음이 불행하면 그 어떤 행복도 행복으로 보일 수 없다. 나는 불행의 이면에 있는 행복을 맛보고 살아왔기에 감히 행복했다고 고백할 수 있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 이 소설의 제목은 ‘모순’이지만 어쩌면 ‘수수께끼’나 ‘신비’도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인생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저자의 말 그대로 인생은 알쏭달쏭한 수수께끼와 같고, 정답이 없는 시험지와 같다. 가도 가도 출구를 찾기 어려운 미궁(迷宮)과 같고, 자욱한 안개 속에서 어디가 길인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는 나그네와 같은 삶이다. 여기로 가도 돌부리에 걸리고, 저 길을 선택해도 가시채에 채이기 십상이기에, 어쩌면 인생이라는 동전에는 앞 면이 행복, 뒷면이 불행이라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최대한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 해도 그 결과를 담보할 수 없는 인생이기에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하루 하루 안개와 같은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슬아슬한 인생이지만, 아슬아슬하기에 더 짜릿한 재미가 있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내일에 대해서 알 수 없기에, 오로지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에 온 정성을 쏟을 수 있기에 집중력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다가올 미래를 미리 염려하기 보다 오늘을 나의 날로, 행복한 날로 만드는 데에 몰입하면 되니, 복잡한 고민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식재료가 어울려서 음식에 풍미가 더해지듯, 행복도, 불행도 다 삶이라는 요리에 맛을 더해준다고 여기며, 각각의 가치를 존중하면 될 일이다.


불행한 일을 만나면 그 불행이 내게 던져준 의미를 곱씹어보고, 행복한 순간을 맛보면 그 행복이 나에게 주는 달콤함을 즐기면 될 일이다. 실수하면 그 실수에서 뭔가 배워서 감사하고, 넘어지면 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툴툴 털고 다시 달리면 될 일이다. 과거의 상처는 흘러가는 물에 띄워 보내버리고,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오늘 내가 할 일들과 오늘 내가 직면한 문제들과 부둥켜 안고 씨름하면서 내일의 나를 새롭게 빚는 데에 몰두할 일이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인생에서, 오늘 내가 맞이하는 이 하루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하루라는 생각으로 사는 인생은 먼 훗날 결코 불행했다고 추억할 수는 없으리라. 오늘도 내게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를 향해 가슴 설레는 모험의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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