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골절 이후, 대학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원으로 쳇바퀴
치매가 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거의 동시에 척추골절로 병원에 입원하셨만 치료 방법은 두분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시멘트 시술을 받으실 수 있어 조금씩 거동이 가능한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예전에도 압박 골절이 있어 시멘트 시술이 불가 했고 결국 전혀 거동을 할 수 없어 계속 병원에 계셔야 했습니다. 한 병원에서 무작정 오래 계실 수 없었기에 우리는 아버지를 병원에서 퇴원 시키고 집 근처에 있는 요양 병원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요양원으로 가셨습니다. 하지만 상태가 안 좋아지면 요양 병원으로, 대학병원으로 옮기 셨다가 좋아 지시면 다시 요양원으로 가셨습니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돌듯이 대학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원을 옮겨다니셨습니다.
요양병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요양원의 선택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요양원을 선택할 때 좀더 아버지가 편한 곳으로 계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동생과 함께 여러 기관들을 직접 방문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저희가 여러 요양원들을 살펴보면서 본 장점과 단점 입니다
먼저 공기 좋은 시골에 있는 요양원은 방도 넓고 텃밭과 주변 환경이 쾌적했지만 우리가 방문하기에는 거리가 있어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어떤 요양원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도 저희 집에서 멀어 고민 끝에 포기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저 역시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자주 방문 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그래서 자주 방문 할 수 있도록 집 근처 요양원을 중심으로 살펴 보다가 한 곳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요양원에 가신 아버지께서 점점 눈에 촛점이 없고 움직이기를 싫어 하셨습니다. 자주 주무시고 그냥 기운이 없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욕을 한다는 이유로 요양원에서 우울증 약과 신경 안정제를 평소 드시던 것보다 용량을 더 세게 처방해 계속 드렸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너무 화가났지만 일단 아버지를 다른 요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집 과의 거리도 중요 했지만
1) 요양원 등급 평가가 가장 좋고
2) 요양원을 잘 알고 있는 방문 간호 센터장님과 요양보호사님들에게 부탁하여 그분들이 시설과 분위기가 가장 좋다고 추천해 주신 곳으로 선택했습니다.
3) 또한 요양원과 주간보호센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을 찾았습니다.
평생 동안 함께 사셨던 아버님이 어머니와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하여 충격을 받으셨기에 낮에 같이 지낼 수 있도록 요양과 주간보호를 같이 하는 기관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요양원에, 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에 가시지만 같은 건물에 있어 두 분이 낮 시간에 만나 함께 지내실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동이 어려운 아버지께서는 요양원에서 그리고 기둥을 붙잡고 걸을 수 있는 어머니는 집에서 모시고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떨어져 계신 곳에 충격을 받으셔 우리는 요양원과 요양 보호 기관을 같이 운영하는 그리고 집에서 가장 가깝고 평가가 좋은 곳을 선택하였습니다. 두 분이 낮 시간이라도 같이 계실 수 있었기에 아버지께서도 점점 안정이 되고 편안해하셨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요양원의 면회가 급격히 제한되어 어머니는 집에서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하루 종일 계시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2번씩 정해진 날 면회를 갔지만 코로나가 심해지자 외부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결국 면회를 가도 아버지와 접촉하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말로만 안부를 묻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버지 표정이 점잠 어두워지셨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가면 활짝 두셨는데 이제는 무표정에 말씀도 잘 않으셨습니다. 마치 우울증에 빠지신 것처럼 자녀와 손주들을 보아도 웃지 않으시는 모습에 제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말을 하지 않던 아버지께서 면회를 간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주야… 난 언제 집에 가니…”
이 말을 들은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솔직히 돌아가실 때까지 요양원에 계셔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아프고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병원과 요양병원 그리고 요양원에 계시는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집이라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