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만 아니라 체육관이나 학원도 왕따 문제는 심각하다.
피아노 학원에서 초등학생 주도권을 잡은 상급반 여학생이 있다. 자기를 따르지 않는 아이를 왕따 시킨다. 그 아이는 학원에 왔다가 집으로 갈 때까지 악보를 들고 혼자 지낸다.
이 사실을 안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따로 여학생을 불러 충고한다. 이 학원에서 왕따를 만들지 말라고.
여학생은 곧장 자기를 따르는 추종자를 데리고 다른 피아노 학원으로 옮겨버린다. 그것도 학원 원장님이 보는 앞에서 우르르 들어왔다가 자기 물건을 챙겨 들고 인사도 없이 몰려 나간다.
집에서는 그 피아노 학원이 이상하다는 뻐꾸기를 날린다. 부모님이 친구에게 전화해서 확인을 해보니 역시 그렇다고 한다. 피아노 학원은 학부모 사이에 이상하게 소문난다.
옳은 행동을 했다가 원장은 학원을 접을 지경이 된다.
이건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래서 원장도 자기 학원에서 벌어지는 왕따 문제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
올스타 복싱 체육관에서 주도권을 잡은 이는 직업이 경찰이다. 강력계에서 근무한다고 들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단 그는 관장과 친하다. 비슷한 나이라 형 동생 하면서 반말을 주고받는다.
경찰 쪽으로 연대를 맺어 체육관 벽에 ‘경찰서 자매결연’ 포스터를 붙이도록 해준다. 체육관 이미지에 상당히 좋다. 아무런 교류없이 포스터만 붙였을 뿐인데 등록하러 온 신입은 호감을 얻는다.
예전에 벌새가 체육관에 다닐 때 경찰이 은근한 제안을 했다.
“공무원 비리를 저지른 자를 제보해 줘. 비리 신고로 가산점을 얻으면 특진할 수 있으니 나중에 사례할 게.”
이에 벌새가 큰 반발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동료를 팔아먹으라는 소리였으니까.
직업이 경찰이니 친하게 지내려는 관원이 많다. 나중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폭력 사고라도 휘말리면 전화를 걸 배경이 생기니까.
나이차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지만 비슷한 또래끼리는 자주 술을 마시고 놀러 가기는 것 같다.
‘경찰서 자매결연’ 포스터를 보고 등록한 신입 회원이 있다. 올스타 체육관이 꽤 괜찮은 곳으로 인식한 것 같다. 이름은 나규한.
첫인상이 운동과 거리가 멀다. 샤워실 본 피부가 무슨 난치병에 걸린 것처럼 새하얗다. 갈비뼈가 드러나고, 근육은 간신히 기본만 있다. 몸이 안 좋아서 군대도 공익으로 다녀왔다고 한다.
“왜 복싱을 배우려고 왔어요?”
조금 친해지게 되자 내가 묻는다. 대답이 의외다.
“인정을 받고 싶어서요.”
“누구한테?”
“누구든지요.”
규한은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런 부분은 더 많이 느낀 것 같다. 거래처에서 자기 외모만 보고 얕잡아 보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차라리 헬스를 하지 그래요. 몸에 근육이 붙게. 든든하게 보일 텐데.”
“헬스를 해봤는데, 코치가 그러더라고요. 체질상 제가 근육이 붙기 힘든 몸이래요.”
아닌 게 아니라 몸이 백치다. 나도 운동 신경이 없는 편이지만 더한 사람은 처음 봤다.
규한은 제대로 스텝만 뛰는데 4달이 걸린다. 스트레이트가 직선이 아니라 휘어져서 나온다. 노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광경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원! 스텝 나오면서 왼손을 그대로 뻗어보세요. 그렇죠. 다음으로 오른손 투! 그게 아니고요. 손목을 바깥으로 돌리지 말고 그냥 쭉! 쭉 뻗어보라고요, 쭈욱!”
아무리 백치여도, 꾸준하게 체육관에서 운동하면 샌드백을 치는 소리가 달라진다. 몇달 지나자 가드 잡는 자세가 나온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등록해서 은근한 경쟁 상대다.
아니라 다를까, 둘의 스파링을 제안하며 경쟁심을 부추긴다. 더 열심히 운동하게 만들려는 노관장의 의도다. 체급이 다르지만 일반 체육관 스파링에서는 따지지 않는다.
드디어 나와 규한이 맞상대가 된다. 메스가 아닌 정식 스파링이다. 헤드기어를 차고 마우스피스를 물고 링으로 올라간다.
주위로 관원이 모인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파이팅 벨이 울린다. 스파링에 익숙하지 않은 시기였다. 어떻게 피하고 어떻게 치라는 말은 들었는데 머리가 하얗게 비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다가 어쩌다 규한의 얼굴을 맞추면 기분이 좋다. 아직 복부를 칠 정도로 어퍼에 익숙하지 않다. 스트레이트나 훅만 날린다.
의외로 체급상 밀릴 줄 알았던 규한이 완강하게 버틴다. 주먹도 제대로 들어온다. 당황해서 물러난다. 그만큼 화가 난다. 자존심 문제다. 더욱 적극적인 싸움이 된다.
규한은 물러서지 않는다. 아마 자신을 인정시키려는 의지일 것이다. 누구에게든지.
똑같이 주먹을 주고받아도 경량급 먼저 체력이 떨어진다.
2라운드 중반에 이르러 규한의 지친 기색이 또렷하게 보인다. 가드가 내려가면서 빈틈이 보인다. 팔에 힘이 없어서 주먹을 들지 못하는 것이다. 금방 주저앉을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린다.
여기에서 몰아치면 나만 나쁜 놈 된다. 체육관에서 초짜 관원끼리 이루어지는 스파링이다.
나는 가드를 바싹 올리고 다가간다. 어디 쳐보라고.
그의 주먹을 맞지만 아무 타격도 느껴지지 않는다. 솜뭉치가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 같다. 더욱 바싹 다가선다. 어디 때려보라는 식이다. 그만큼 규한이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그때, 모르기는 해도, 내 눈빛에 바보 멍청이라는 의미가 담긴 듯하다.
갑자기 규한이 미친 듯 주먹을 휘두른다. 좌우 훅 연타, 스트레이트와 어설픈 어퍼컷까지.
“으아아아아!”
규한의 기합에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구경하던 관원들이 박수치며 응원을 보낸다. 내 가드에 닿는 감각이 아프지는 않고 오히려 신선하다.
그 와중에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명징하게 들린다.
“남자네, 남자야.”
2라운드를 마치는 종이 울리자 규한은 그대로 주저앉는다.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다. 잘 버텼다.
규한에게 경력자 딱지가 붙을 무렵 편의점 파라솔에서 맥주를 마신다. 복싱이 너무 즐겁다며 회사 직원과 클럽에 간 이야기를 해준다.
“시비가 붙었어요. 술 취한 놈이 저희 여직원한테 찝쩍거리는 거예요. 제가 막아서니까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더라고요. 놀랐어요. 상대의 주먹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다 보이는 거예요. 다들 꺅꺅거리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이상하더라고요. 술도 마셨고, 때문에 겁을 먹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체육관에서 흔하게 보는 게 싸움이잖아요.”
“어떻게 했어?”
“팔목을 딱 잡으니까 더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그 사람 친구들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데리고 갔어요.”
“만일 그 상황에서 붙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죠……. 제가 질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그날 이후 회사에서 약골 이미지 벗었어요.”
캔맥주를 가볍게 부딪친다. 막내 동생이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아 뿌듯하다.
그렇게 복싱을 좋아하던 규한이 갑자기 사라진다. 어떤 기미를 느낄 수도 없었다.
“요즘 체육관에 규한이가 안 보이네.”
노관장에게 물어도 담담한 반응만 돌아온다. 이상하다. 뭔가 알고 있는데 드러낼 수 없는 그 무엇을 나는 감지한다.
비밀은 없는 법이다. 나는 혁진에게서 그 이유를 알아낸다. 그와 경찰은 동갑내기 친구다.
원인은 여자다. 규한은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 곱상한 외모에 성실하게 운동한다. 어느 날이든 저녁 7시에 체육관으로 오면 항상 규한이 샌드백을 치고 있다. 그만큼 실력이 늘어가고 있다. 지나가면서 먼저 인사하는 여성 관원이 꽤 있다.
이게 한 관원의 눈에 거슬린다. 경찰이다.
뻔한 치정극 레퍼토리 같다. 경찰이 호감을 가진 여성이 자꾸 규한과 친하게 지내니까 그게 거슬렸던 것이다. 어이없게도 경찰은 아들 두 명을 둔 유부남이다. 뭔가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아마 나이 어린 규한이 경찰에게 수그러드는 태도를 보였어야 하는데, 경찰 입장에서는 그게 불만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경찰은 자신을 따르는 동생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절대로 규한과 인사를 나누지 말고 아는 척도 말라. 스파링도 말라. 개념이 없는 동생들은 곧이곧대로 그의 말을 따른다. 마치 조폭 조직처럼 보인다. 동생들은 주변 친구까지 끌어들인다.
헛소문이 퍼진다. 규한이 코치에게 싸가지 없이 굴었다더라. 어느 여성 회원이 규한 때문에 체육관에 나오기를 어려워한다더라.
갑자기 인사를 받지 않고 스파링도 거절하는 관원의 태도에 규한은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고,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결국 자기 짐을 챙겨 체육관에서 나가고 만다.
고작 보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람 하나 매장하는 게 이렇게 쉽다.
“도대체 그 친구 왜 그래? 경찰이 그래도 돼?”
혁진은 샌드백을 툭툭 건드리며 씁쓸하게 대답한다.
“들어보니 왕따 문화는 경찰이 더 심한 것 같더라고요.”
관장은 모든 사실을 알면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에 애매한 위치다. 단지 관원 1명이 빠졌을 뿐이다.
경찰이나, 그를 따르는 동생이나, 관장이나 전부 비열하다고 욕했지만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
저녁에 경찰이 술 한잔 산다고 제안한다. 체육관 핵심 멤버에게 훈련을 마치면 어디 술집으로 모이라고 이야기가 돈다. 관장과 코치도 따라가기로 한다. 경찰이 그의 추종자에게 한턱 내서 규한의 사건을 메우려는 의도 같다.
아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나는 참석하지 않는다. 평소 경찰과 친하지도 않고 가봐야 뻔한 일이다. 혹시 내 험담을 하지 않을까 의혹이 일어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정이 떨어진 상황이다.
나중에 경찰은 후배를 데리고 와서 신입 회원으로 등록시킨다. 규한의 빈자리를 그렇게 채우고 있다. 여기는 경찰서와 자매결연을 맺은 체육관이니까.
내 양심상, 슬쩍 규한에 대해 비춘 적이 있다.
운동하다가 쉬면서 관원과 잡담을 나누던 중이다. 경찰도 끼어 있다. 나는 왜 왕따를 시켰느냐고 따지지는 않는다. 자기끼리 쉬쉬하면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요즘 규한이가 안 보이네. 복싱으로 자신감을 얻어가는 중이었는데 누군가 그 친구의 발목을 잘라버린 것 같아.”
이런 상황에서는 나이가 도움이 된다. 평소 내가 형님으로 대우받는 편이라 관원들이 움찔거리며 위축된다. 최소한 양심에 찔리는 부분이라도 있을 것이다.
반면 그들 중 우두머리인 경찰은 아무 변화가 없다. 뻔뻔할 정도로 의외다. 하긴 평소에도 규한과 친하게 지내는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으니까.
“그러게요. 이제 자신감을 다 얻은 모양이죠. 나오지 않는 거 보니까. 아니면 아예 포기를 했든지요.”
“너 경찰이면서 그래도 되냐……?”
최소한 규한과 의리는 지키고 싶다.
내가 조용하게 묻는다. 확실히 복싱을 배운 효과가 있다. 배짱이 늘었다.
경찰은 고개를 슬쩍 젖히더니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면서 나를 바라본다. 같잖게 보는 걸까. 취조실에서 용의자를 대하는 태도가 저런 것일까.
이런 대립에 다른 관원들은 번갈아보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다.
“무슨 소리예요? 야, 스파링이나 하러 가자.”
경찰이 획 돌아서더니 링으로 걸어간다. 관원들이 졸졸 따라나선다.
나는 터뜨리고 싶은 욕설을 간신히 참는다.
이런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언제든 왕따를 당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