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5월

난 아직도 초여름이라 부른다

by Sona


지난밤에는 밤새 하늘이 떠나갈 듯한 천둥과 함께 비가 장대같이 내렸다. 그러더니 오늘은 깨끗하게 맑은 하늘에 뜨거운 햇볕이 전형적인 싱가포르 날씨다. 일 년 내내 덥다가, 비가 오다가, 천둥이 쳤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는 여기에서 일 년은 계절감 없이 스르륵 흘러간다.


그래서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려면 그게 작년인지 2년 전이었는지 연말이었는지 연초였는지가 헷갈린다. 한국에서였으면 지난여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할 수 있고, 그 일이 가을이었는데 그게 작년 가을인지 재작년 가을인지 기억을 더듬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게 안 통한다. 어느 기억이고 난 반팔을 입고 있고 사람들을 땀을 흘리고 서 있다.


계절이 없음이 한 때는 큰 상실로 다가왔었다. 내 일 년의 리듬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이맘때면 찬바람이 한가닥 불어와 재킷을 꺼내 입어야 하는데... 이맘때면 아침 첫 발걸음에 찬바람이 콧속 가득 들어와야 하는데... 이 모든 순간들이 꿈처럼 현실감이 없어진다. 그리고 더운 공기와 뜬금없이 쏟아지는 비만 있었다.


난 가벼운 재킷을 입는 계절을 좋아했다. 그 계절이 찬란하기도 했지만 여름 가벼운 옷차림보다는 차려입을 수 있고 두꺼운 겨울옷보다는 가벼운 옷차림이 좋았다. 그런데 초반에 싱가포르에서 다니던 회사는 봄가을이 피크였다. 첫 몇 년간 봄가을에 한국을 갈 수가 없어서 슬펐다.


내 옷장은 여름옷뿐이다. 계절이 없으니 계절마다 꺼내는 옷도 없다. 때때로 낡은 옷을 정리할 뿐이다. 때로는 그게 지겨워서 옷을 사러 나간다. 그런데 돌아오면, 여름옷 하나가 또 늘어나 있을 뿐이다.


이제는 사철 무더운 여기 흐름이 익숙하다. 무더운 열기는 대체로 쨍한 햇볕과 함께여서 맑은 날을 좋아하는 나에겐 나쁘지 않은 계절이 되었다.


그래도 계절이 아쉬운 나는 아직도 this summer.. it's spring.. 같은 말들을 쓴다.


근데 차마 winter는, 못 쓰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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