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디스크로 미뤄진 2차 난자 보존
1주 후, 두 번째 난자 보존을 하러 갈 예정이었다.
지난번에 겪어본 호르몬 주사 횟수와
그 이후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감정 기복이 얼마나 심해지는지 이미 경험해 봤기에
휴가 계획, 병원 예약, 시술 일정, 회복 기간까지
하나하나 맞춰놨었다.
그런데 시술을 열흘 앞둔 지난 주말 아침,
요가를 하던 중 허리에 이질감이 왔다.
“아, 근육이 삐끗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30분, 1시간…
시간이 갈수록 통증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서서 걸을 수 없었고,
허리가 밑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낯선 고통.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말 그대로 구만리 길이었다.
몇 번을 주저앉다시피 울며 집에 겨우 도착했다.
그 와중에 약국에 들러 복대 사온 나.. 칭찬한다.
병원 진단은 ‘초기 허리 디스크’.
이렇게 아픈데 초기라니, 믿기 어려웠다.
세상 모든 허리 디스크 환자들에게 리스펙을 보낸다.
걷는 것조차 무리인데, 나는 서울에서 판교까지
출퇴근을 한다. 편도만 1시간 40분,
버스와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탄다.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에 조금만 흔들려도
세상을 하직할 것 같은 고통이 몰려온다.
출근해서도 문제다.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리고,
서 있자니 허리에 힘이 빠진다.
근데 진퇴양난인 건 난자 보존 때 맞았던
주사의 부작용과 통증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기에,
그때 연차를 쓰기 위해서
지금 이를 악물고 출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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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여전히 이 일이 왜 나에게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큰돈 들여서
그걸 왜 하냐”는 말을 한달 넘게 매일 밤 듣고 있다.
회사에 난임 시술 1회 지원 제도가 있어
일단 그 비용으로 했다 하니,
“미혼인데 그런 소문 나서 회사 어떻게 다닐래.
연예인들 하듯이 남편도 없이 애나 가질래?
정말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나에게는 내 몸과 미래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며,
나라에서도 여성들에게 지원하는 선택 사항이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남동생에게는
조금이나마 이해를 바랐던 내가 바보였다.
신생아 육아 중인 그는 내 상황에 대해
“이야기 듣고 싶지도 않다” 했다.
”누나는 힘든 게 뭔지 절대 모른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그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결심했다.
가족에게는 이쪽 문제에 대한 지지를 아예
기대하지 않기로.
남처럼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덜 상한다.
솔직히, 지금은 내 모든 말이 고깝게 들릴 것이고,
나 역시 양반이 아니라서 그런 말을 하는 가족이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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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답답하고 억울한 순간도 많다.
하지만 허리 디스크가 조금만 더 심했더라면,
난자 보존 일정은 물론 일상 자체가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나는 모양은 이상하지만
여전히 걸을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다음 시도를 준비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난소 기능을 확인하게 된 건 천만다행이다.
몇 년 뒤가 아니라, 아직 선택할 수 있을 때
알게 됐으니 말이다.
또, 지금 다니는 회사가 유연근무제가 있으며
안정적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도
다행이다. 연봉까지 낮았거나,
예전 회사(방송국)처럼 스케줄 근무를 하고 있었다면
이번 허리 디스크에 난자 보존 준비까지 겹쳐서
정말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진짜 이만해서 다행이다.
첩첩 산중이지만 입춘 바람이 선선하다.
나의 2차 보존은 추석 직전이다.
채취 때 연차 쓰고 추석까지 잘 쉬면
오히려 좋을 것이다.
추석에는 여행 가야지.
자유를 누릴테다.